150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1517년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 등의 스페인인들이 침략하기 전에 남아메리카에는 잉카·마야제국 등이 존재했다. 잉카(Inca)는 ‘태양의 아들’인 황제를 지칭하는데, 남북 4000km에 면적이 약 95만㎢에 달하는 대제국이었다. 수도 쿠스코의 인구 20만 명을 비롯해 잉카제국의 인구는 700만 명이 넘었다. 잉카제국의 특징은 정교한 관료조직과 교통망이었다. 위로는 4명의 부왕(副王)과 4만 가구를 지배하는 관리에서부터 10가구를 지배하는 말단관리까지 정교한 관료조직을 갖고 있었다. 차스키라는 파발제도는 하루에 240km를 이동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황제는 아침에 태평양 연안에서 잡은 신선한 물고기를 저녁 만찬에서 맛볼 수 있었다.
마야제국도 잉카 못지않았다. 마야인들은 1년을 정확히 365일로 나눌 정도로 천문학이 발달했으며, 0의 개념도 알고 있었다. 주자(主字)와 접자(接字)의 짜맞춤으로 이루어지는 마야의 그림문자는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와 음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한자(漢字)의 조성원리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카나 마야제국에는 철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황금의 제국이라는 별명답게 풍부한 금과 은·동 같은 광물이 있었으나 의식이나 장식용이었고 도구는 석기였다. 석기시대에 이런 대제국을 건설했던 것이다.
우리 국사 교과서의 청동기시대 상한연대를 끌어올리는 문제가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국사교과서가 ‘청동기시대 때 국가가 형성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사교과서의 논리대로라면 95만㎢에 700만이 넘는 인구를 갖고 있었던 잉카·마야제국은 석기시대이므로 국가가 아니다. 석기시대에도 국가가 존재했다는 세계사의 상식이 우리나라에서만 통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단군조선을 부인하기 위해 고안한 ‘청동기시대=국가 성립’이라는 등식이 아직도 고수되는 데 있다. 해방된 지 한 갑자가 넘었으면 일제 식민사학의 틀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멕시코를 방문한 부시 미국 대통령이 칼데론 대통령과 마야 유적지를 살펴보는 모습을 보고 떠오른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