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 지역은 선사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략적 요지에 위치한 이유로 곳곳에 성곽유적이 남아 있다. 서남부 한강을 비롯하여 한탄강의 절벽 위나 임진강 연안에 크고 작은 성(城)들이 오랜 우리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경기북부 지역의 주요 성들의 입지는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진다. 먼저 고대와 중세에 중요한 교통 수단으로서 수로(水路)가 이용되었기 때문에 강 부근에 위치한다. 험한 내륙에서는 최단거리의 도로를 사용했기 때문에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도로도 중요한 입지였다. 그리고 관방(關防·국경방어)의 목적으로 산악 지역에 위치했다.

◆백제시대 첫 축성 ‘북한산성’

고대(古代) 백제시대에 처음 축성되어 조선 숙종 대에 대규모로 고쳐 쌓은 유적이 고양시의 북한산성(北漢山城)이다. 총 길이 11㎞ 에 이르는 경기북부 최대의 석성(石城)이며 최고지점은 해발 700m가 넘는 산악지대에 축성된 성곽이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남진(南進)과 신라의 북진(北進)을 막던 성곽이며, 고려·조선시대에는 외침에 대비하여 대대적인 축성이 이루어진 곳이다. 전란 시 도성의 임금이 백성들과 함께 피신하는 곳으로 성내에 행궁(行宮)도 설치되었던 중요한 산성이다.

북한산성 아래 한강변에는 행주산성(幸州)이 있는데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행주대첩과 도원수 권율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이곳 행주에서 북서쪽 한강 하류에 사적으로 지정된 파주시 오두산성(烏頭)이 있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요충지에 위치해 강화도 등을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세력을 막고 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

현재 정상부에 통일 전망대가 자리해 있어 그 역사적인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칠중성(七重城)은 파주시 적성에 자리한 삼국시대의 성곽이다. 임진강변에 위치한 요충지로 삼국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특히 고구려, 신라가 삼국의 패권을 놓고 격전을 벌인 곳이다.

◆연천엔 주로 고구려 성곽유적

임진강 건너 연천 지역에는 주로 고구려의 성곽 유적을 볼 수 있다. 호로고루성을 비롯해서 당포성, 은대리성이 그 대표적인 고대의 성곽이다. 이 세 유적 모두 임진강과 한탄강 절벽 위에 위치한 천연의 요새 유적이다. 총 길이가 1㎞를 넘지 않는 작은 성이지만 출토되는 유물과 성곽 축성기법을 볼 때 남한지역에서 가장 잘 남아 있는 고구려 유적이라는 점에서 그 높은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주변경관과 함께 어우러져 있고 그 동안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그 연구와 보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곳이다.

포천 지역의 유적은 한탄강과 내륙지역에 나뉘어 발견되고 있다. 한탄강과 가까운 보개산에는 보개산성이 있는데 일명 후삼국시대에 궁예가 왕건과 접전을 벌인 산성으로 알려져있다. 한탄강을 넘어 포천 소홀에는 반월산성(半月)이 있다. 청성산을 따라 쌓여진 퇴뫼식(산 정상을 둘러싸고 쌓아올리는 식) 산성으로 총 길이는 1㎞에 이른다. 이 성곽은 포천에서 의정부, 서울로 연결되는 내륙도로를 살피던 산성으로 고구려 시대의 성곽이다.

포천의 서남쪽에 위치한 양주지역엔 대모산성, 구리시에는 아차산성이 자리해 있다. 양주 대모산성은 높이 212m 대모산 정상부에 자리한 삼국시대의 성곽으로, 그 유명한 매초성으로 추정되고 있는 산성이다. 매초성 전투는 675년 9월 신라가 당나라 20만 대군을 대파, 실질적인 삼국통일을 이룬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된 전투다. 아차산성은 서울시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의 유적으로 백제가 한성을 수호하기 위해 지었고, 고구려가 백제의 풍납, 몽촌 토성을 공략할 당시에 거점으로 활용한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30여 개의 보루(堡壘) 유적이 발굴되었고 주거지, 무기류, 토기류, 곡물류 등 여러 유물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경기북부 지역에는 고대로부터 근대의 역사를 현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성곽문화재가 남아 있다. 그 동안 접근의 어려움 등으로 조사가 힘들었으나 최근 들어 여러 학술기관과 관계기관의 노력으로 그 가치를 새롭게 인정 받고 있다. 이 성곽문화재의 체계적인 보전과 활용에 대한 우리 모두의 지혜가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