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경기도 용인의 흥국생명연수원 체육관. 프로배구 2006~2007 V리그에서 여자부 선두를 달리고 있는 흥국생명의 황현주 감독이 2층의 김하나 매니저를 향해 소리쳤다. “올라가도 되냐?” 선수의 방이 있는 ‘금남(禁男)의 구역’에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다. 20m 남짓 되는 좁은 복도를 따라 길게 놓인 신발장에는 수백 켤레의 운동화와 구두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선수마다 사복을 입고 외출할 때 신는 신발을 10켤레 이상씩 갖고 있다.
복도를 따라 나란히 배치된 방은 9개. 케이티 윌킨스(미국)만 침대와 샤워실이 있는 방을 쓰고, 나머지 선수들은 2인 1조로 온돌방 생활을 한다. 선수들의 방을 보고 싶었지만 매니저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맨 몸에) 대충 걸치고 자는 선수들이 많아요. 오히려 곤란하실걸요?” 지난해 7월 2층에 있던 샤워실을 1층 감독실 옆으로 옮기기 전까지만 해도 속옷 차림으로 2층을 돌아다니는 선수들도 많았다고 한다.
컴퓨터 5대, 소파, 대형 TV, 치료 장비가 설치된 휴게실에 가봤다.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소파에 둘러 앉아 잡담을 하며 간식을 먹는 선수들 표정이 각양각색이었다. 10분도 안돼 선수들이 방으로 흩어졌다. 꿀맛 같은 낮잠을 자는 시간. 불 꺼진 복도에 적막감이 돌았다.
선수들이 졸린 눈을 비벼가며 오후 훈련을 시작한 뒤 선수들의 방을 볼 수 있었다. 매니저는 “대부분 곰 인형 한 두 개씩은 갖고 있는데, 고참 선수의 성격에 따라 방마다 특징이 있다”고 했다. 고참일수록 화장품 등 개인 용품이 많아 방이 비좁다는 것. 9년차 세터 이영주(27)는 ‘화장품 여왕’이다. 책상이 40개가 넘는 화장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터넷 쇼핑이 취미다. 벽에 걸린 ‘달마상’ 그림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는 이유로 10만원을 주고 구입한 것이다. 최고참 구기란(30)이 대충 개어 놓은 두꺼운 이불 옆에는 ‘람세스’ 책이 놓여 있었다.
▲ 다 잘될거야~ 흥국생명 여자배구단 숙소 /홍헌표·조인원 기자 |
오후 8시. 저녁식사를 마친 뒤 휴게실은 5년차 이하 후배들 차지가 됐다. 김연경은 눈으론 컴퓨터를 보고, 손은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날리느라 분주했다. 황 감독은 “2~3년 전보다 분위기가 훨씬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1~3년차 선수들이 화장실, 샤워실, 체육관, 복도 등을 맡아 의무적으로 청소하던 ‘악습’은 없어졌다. 고참이 잔심부름을 시키거나 군기를 잡는 경우도 없다. 이영주는 “옛날엔 3~4년 선배가 옆에 지나가기만 해도 찬바람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모두 친자매처럼 지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