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야탑동 송림사거리 성마르코성당 건너편, 자그마한 3층 건물 앞에 빨강, 파랑, 흰색 선이 함께 돌아가는 이발소 표시등이 켜져있다. ‘아직도 이발소가 있나’신기한 생각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30평 탁 트인 공간에, 남자들만 있어 칙칙할 거란 예상을 확 깨고 여느 미용실 못지 않은 깔끔한 인테리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한쪽 벽면에는 ‘분당구지정 모범업소1호’간판도 붙어있다.
“어서오세요!”외치며 나온 이는 ‘새재원 이발관’을 운영하는 김재원(63) 사장. 45년동안 이용업 외길을 걸어온 그는 현재 큰 아들 회혁(34)씨와 함께 이발사로 일하고 있다.
이곳은 여느 이발관과는 조금 다르다. 깨끗한 실내 분위기 외에도 요즘 헤어살롱에서 유행하는 탈모예방 두피관리(1만원)와 면도 후 거친 피부를 진정시키는 팩을 해주는 피부맛사지(1만원), 남성전용 퍼머(4만원·이발 포함)도 함께 하고 있다. 면도·샴푸·헤어컷은 기본. 1만5000원에 1시간 동안 세가지 모두를 정성들여 해주는 덕분에 동네 아저씨들은 물론 지나가던 사람들도 ‘어, 이발소 표시등이다’라며 반색을 하고 들른 뒤론 단골이 되곤 한다.
이날도 한가할 시간인 오전 10시쯤인데도 15분 단위로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생각보다 손님이 많다고 묻자“지금은 바쁜 것도 아니에요. 점심 시간 지나고, 오후 3~4시 되면 눈코뜰새 없이 바빠져요. 일할 사람이 없어서 문제지. 마누라도 나와서 거들어야 한다니까요”하며 김씨가 껄껄 웃었다. “출근길에 들러 면도나 이발을 하고 가는 손님도 있어서 6시부터 문을 열어야 해요.”아들 회혁씨가 거들었다.
김 사장이 자신의 이름을 딴 ‘새재원 이발관’을 야탑동에 연 것은 지난 1994년. 서울에서 20여곳을 전전하며 이발소를 하다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자그마한 이발소로 시작해 지금은 본인 소유의 3층 건물에 직원 셋을 둔 어엿한 ‘사장님’이지만 그 동안의 길이 쉽지는 않았다. 이발소는 점점 줄어들어 사람들이 일하려 하지 않는 반면 손님들은 미용실로 몰리거나 값싼 남성전용 헤어클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1년에 1000개씩 이발소가 사라질 정도죠. 하지만 이발소는 엄연히 미용실과 달라요. 머리카락 자르는 기술, 기법도 다르고. 남자들의 ‘각이 진’머리는 이발소에서 잘라야 스타일이 제대로 나오는 법이거든.”
‘이발소의 정통성’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고집을 곁에서 지켜보아온 장남 회혁씨 역시 그 길을 택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가정형편도 있었고, 개인 사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버지가 이발일을 하시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아무리 미용실·헤어살롱이 많아져도 이발소 역시 있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이발 철학’에 넘어간 거죠, 하하.”
회혁씨는 15년째 아버지 밑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엔 김씨 옆에서 어깨 너머로 배웠던 그는 지난 2004년 세계미용대회 한국대표선발대회에서 은상을 탈 정도로 실력이 부쩍 늘었다. 그래도 김씨는 “아직은 나보다 못하다”며 아들을 독려하기 일쑤. 그런 김씨의 소망은 아들 회혁씨가 이발관을 물려 받아 유명 브랜드의 미용실 못지 않은 ‘전문이발센터’로 키우는 것. “평생 한 우물을 파니 그래도 아들까지 나를 좇아 명맥을 이을 수 있는 겁니다. 이발소가 추억의 장소로만 남지 말고, ‘머리 깎는다’하면 으레 이발소 표시등부터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