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월16일은 한국현대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소강 민관식(閔寬植, 1918~2006) 박사의 1주기가 되는 날이다. 소강(小崗)은 타계 전날(2006년 1월15일) 지인과 늘 그래왔던 것처럼 테니스를 즐겼고 잠자리에 들기 전 포도주를 마셨다.
그리고 잠을 자다가 아무도 모르게 영면(永眠)의 세계로 슬쩍 자리를 옮겼다.
소강의 빈소가 차려진 삼성서울병원에는 많은 조문객들이 다녀갔다. 그러나 슬퍼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산 사람이 간 사람을 부러워하는 진풍경이 나흘 동안 펼쳐졌다. 수많은 조문객 중에는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현 경기도지사)이 있었다.
김의원은 고인과 얽힌 재미있는 얘기를 하다가 이런 말을 했다. “고인을 가리켜 사람들이 9988234가 아니라 9988004라고 말한다.”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 아프고 사흘 째 죽는 게(9988234) 모든 노인의 소망인데 소강은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단 하루도 아프지 않고 저 세상으로 갔다(9988004)는 뜻이었다.
기자는 이 얘기를 주간조선 1890호(2006년 2월6일자) 편집실에 썼다. 이후 9988004는 유행어가 되었고, 어느 일간지는 '9988'을 연재칼럼 제목으로 쓰고 있다.
지난 1월9일 태릉선수촌에 소강 민관식 박사 흉상이 세워졌다. 대한체육회가 체육발전에 기여한 소강의 업적을 기려 1주기에 즈음해 흉상을 세운 것이다. 정관계, 체육계 인사와 소강을 따르던 많은 인사들이 흉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흉상 제막식에서 혼자 된 부인 김영호 여사는 시종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먼저 간 남편을 흉상으로 만나니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나 슬펐을까. 소강을 아는 사람은 한결같이 부인 김영호 여사를 칭찬한다.
“김영호 여사가 없었다면 소강도 없었다.”
소강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지만 ‘민관식 콜렉션’으로 유명하다. 소강은 88년의 생애 동안 공과 사를 가리지 않고 생활 속에서 얻은 사물들을 수집해왔다. 5만여 점으로 추정되는 물품 하나 하나가 한국 근현대사를 증언하고 있다. 민관식 콜렉션은 김영호 여사의 집념과 정성이 없었으면 태어나지 못했다. 남편이 가져오는 사물을 자질구레한 것까지 의미를 부여하고 분류해 보관해 온 사람이 그였다.
기자는 2005년 1월 초부터 8개월간 주말마다 민관식 콜렉션을 찾았다. 그리고 소강과 김영호 여사로부터 개개의 사물에 얽힌 수많은 사연을 들었다. 그렇게 해서 쓴 책이 ‘실물로 만나는 우리들의 역사-민관식 콜렉션 탐험기’였다.
기자는 1월1일 김영호 여사댁에 세배를 다녀왔다. 소강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콜렉션 룸을 다시 보고 싶었다. 소강의 마지막 유업은 콜렉션의 소장품을 단독 건물을 지어 일반에 공개하는 것이었다. 여든두살의 아내는 남편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지팡이에 의지한 채 이리저리 뛰고 있다.
다음의 동영상은 김영호 여사의 동의 하에 촬영한 민관식 콜렉션의 모습이다. 하루빨리 민관식 콜렉션이 일반 사람에게도 공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민관식 콜렉션 룸 최초 공개…소강 타계 1주기 맞아 / 주간조선 조성관기자
민관식 콜렉션 공개 / 주간조선 조성관기자
민관식 콜렉션 공개 / 주간조선 조성관기자
민관식 콜렉션 공개 / 주간조선 조성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