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CMBA의 정병찬 사장

IMF 위기로 다들 먹고 살기 어려워졌다고 할 때였다. 한데 미국에서 유학한 뒤 돌아와 외국 기업에서 고액 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국내 기업도 너 나 할 것 없이 “글로벌 인재를 키워야 한다”며 이들을 찾았다. 이들의 몸값은 나날이 올랐다. 바로 미국 유수 대학의 MBA(경영학 전문대학원 석사) 출신들이다.

그러면서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가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MBA로 새 인생을 꿈꾸는 사람이 늘어났다. 평일엔 회사원으로 일하고, 주말엔 MBA 입학시험 GMAT 공부를 하는 학생이 된 사람도 늘어났다. ‘샐러리던트(샐러리맨+스튜던트)’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하지만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운 때엔, 세계의 톱 10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고 해도 과거처럼 원하는 고액 연봉 자리를 얻기란 쉽지 않다. 시장에선 “업계에서 넘쳐나는 게 MBA 출신”이란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국내 최대의 MBA 진학업체인 JCMBA 정병찬(鄭秉贊·42) 사장의 말은 다르다. 그는 “MBA 지원자가 늘어나면서 톱 10 경영대학원에 합격하는 사람도 늘어났다”며 “MBA 시장은 죽은 게 아니라 여전히 존재하며, 경쟁이 보다 치열해졌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1996~ 1997년만 해도 억대 연봉을 바라는 소수와 재벌집 2세들이 MBA 공부를 하러 떠났다”며 “지금 MBA는 필수이고 생존조건이 됐다”고 했다.

1995년 MBA 관련 동호회 개념으로 문을 연 JCMBA는 MBA 준비생에겐 나침반 같은 존재이다. JCMBA는 MBA 전문학원이자 MBA 준비생과 졸업생이 만들어가는 네트워크 포털 사이트(www.mba.co.kr)다.

현재 국내에서 MBA에 도전하는 사람 은 한 해 2000~3000명 선으로 알려져 있다. 지원자가 많아진 만큼 합격자 수도 늘어났다. 톱 10 경영대학원에 한 해 합격하는 한국인이 200명 선이다. 10년 전만 해도 20~30명 정도 수준이었다. 정 사장은 “미국 MBA 학생의 외국인 분포를 보면 인도가 1위이고 그 다음이 한국”이라고 했다.

이렇게 MBA 출신이 늘어나다 보니 과거처럼 고액 연봉을 주는 외국계 회사에 입사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MBA에 대한 수요는 존재한다고 한다. 정병찬 사장은 “다만 과거처럼 ‘무조건 들어가면 된다’ 식으로 해선 안 된다”고 했다.

“목표를 반드시 세워야 합니다. ‘지금 이건 아닌데…’ 같은 막연함으로 MBA를 준비해선 안됩니다. 그러면 곧바로 포기하기 쉽지요.” 특히 그는 “MBA 이전의 경력과 MBA 학위가 만났을 때, 어떤 종류의 시너지 효과를 낼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면서 “무조건 좋은 대학의 MBA 학위만 얻는 건 해답이 아니다”고 했다. MBA 같은 실용적이고 현장 중심의 과정에선 과거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따라 학습 효과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시도 때도 없이 MBA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요즘도 MBA 시험 때의 에세이 쓰는 법이나 ‘왜 MBA인가’ 같은 주제로 강의를 하곤 한다. 대학생만 만나면 “제발 고시 공부를 하지 말라”며 “꿈과 야망을 갖고 인생을 개척해보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MBA의 필요성 세 가지는 이렇다. 첫 번째는 커리어 관리, 두 번째는 경영학적 지식, 그리고 마지막은 영어와 외국 경험이다.

사실 그가 말하는 이 모든 것은 그의 인생 경험에서 비롯됐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정씨는 삼성물산 재무관리팀에서 3년간 외환딜러 및 M&A 업무를 맡았다. 그때 고액 연봉을 받는 컨설팅 업체나 국제투자은행에 근무하는 MBA 출신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사표를 내고 1년간 준비한 뒤 톱 10 경영대학원에 드는 MIT 대학의 슬론 스쿨에 입학을 지원했다. 하지만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내년에 꼭 다시 도전하겠다”는 답장을 팩스로 보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내년에 입학할 수 있다”는 입학 허가서가 왔다. 그의 도전자세에 학교 측이 감동한 것이다. 이때가 1995년이었다.

그는 자신이 MBA 입학을 준비하면서 경험한 노하우를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우선 MBA의 입학시험(GMAT) 문제를 유형별로 정리해 문제풀이 요령을 소개한 학습지를 출간했다. 천리안, 유니텔, 나우누리 등 PC 통신에선 JCMBA라는 인터넷 동호회를 만들었다. MBA 지망생을 상대로 한 무료 상담도 했다. 당시만 해도 MBA 자체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인터넷 주소(www.mba.co.kr)도 얼른 만들어 가졌다.

자신은 회사의 주주로만 남아있는 상태로, 1996년부터 2년간 미국 MIT대학의 슬론 스쿨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돌아와선 AT커니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다가 2000년부터 벤처 인큐베이팅 회사와 JCMBA를 본격 운영했다.

요즘 국내에도 외국 대학과 손을 잡거나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국내 MBA 과정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정 사장은 책상머리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영어로 공부하는 MBA가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진정한 MBA와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경영학 이론 습득만을 원한다면 국내 MBA 과정을 밟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외국계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흔히 말하는 ‘MBA 출신’은 국내에서만 영어로 경영학을 공부한 사람을 뜻하진 않죠.”

그는 “국내 대학이 외국 대학과 교류해서 학생이 직접 현지에 가서 공부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정 사장은 “우리나라처럼 뚝딱뚝딱 1년 만에 MBA 과정을 만드는 나라, MBA 허가 받는 게 중요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외국처럼 MBA를 통해 현장과 실용적인 이론을 배울 수 있도록 제대로 준비한 뒤 정체성을 가진 과정을 개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타깃 그룹을 확실히 만든 뒤 산학이 연계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MBA는 제도 자체의 국적이 미국이다. 그러면 요즘처럼 유럽과 중국을 중심으로 생겨나는 MBA의 경쟁력은 있을까. 정병찬 사장은 “중국에서 나중에 사업을 하려는 분들의 경우엔 베이징대 MBA 같은 곳도 도전해볼 만하다”며 “중국어로 하는 과정, 영어로 하는 과정이 따로 마련돼 있다”고 했다. 그는 “유럽에도 프랑스의 인시아드, 스위스의 IMD 경영대학원 같은 톱 10권에 드는 MBA가 있다”면서 “그 밖의 MBA 과정은 아직 인지도 면에서 미국에 비해 떨어지는 게 단점”이라고 했다.

JCMBA는 현재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한 회원만 5만여명에 달한다. 이 중 매년 4000명 정도가 새로 업데이트 된다. 그는 요즘 JC Econet이라고 해서 MBA 출신이나 MBA 준비생을 대상으로 경력관리를 해주고 일자리를 찾아주는 서피 펌 일도 함께 하고 있다. MBA 준비생에게 시험 방법을 가르쳐주고, 다녀온 사람끼리의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면서, MBA 준비생이나 졸업생의 취업까지 맡는 셈이다.

새해 1월부터는 ‘MBA 잉글리쉬’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전화로 영어를 배우거나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인데, 일반적인 ‘비즈니스 영어’와는 다르다고 한다. MBA 과정에서 쓰는 용어를 중심으로 현장에서 배우는 케이스를 영어로 배운다고 보면 된다.

정 사장은 “요즘은 현재가 아니라 40대 이후를 내다보고 MBA를 하는 층이 많아졌다”면서 “그런 면에서 ‘MBA 전도사’로 한참은 더 일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