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에 나온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On Liberty)’은 슬픈 사연을 담고 있다. 밀은 20여 년을 기다린 끝에 해리엇 테일러(Harr iet Taylor)와 결혼했다. 밀이 쓴 모든 글은 사상의 반려자인 테일러의 감수를 거쳐 세상에 발표되었다. 그러나 ‘자유론’을 쓰는 도중 부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밀은 ‘함께 했던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던 추억, 그리고 그 비통했던 순간’을 그리며 원고를 ‘미완성’ 상태로 출판사에 넘겨버렸다.
‘자유론’은 현대사회를 짓누르는 ‘다수의 횡포’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한다. 평등이 시대의 대세가 되면서 창조적이고 뛰어난 개인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수가 관습과 여론을 내세워 진리를 독점하고 정답을 강요하면 소수는 숨을 쉴 수가 없다. 밀은 ‘개인의 사사로운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들어가 마침내 그 영혼까지도 통제하는’ 다수의 횡포를 민주주의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로 지목한 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의 원리’를 천명한다. 인간사회에서 그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 그 대신 남에게 해만 주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는 절대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밀의 신념이다.
밀은 사상의 자유를 특별히 강조한다. 그는 ‘어떤 한 생각을 억압한다는 것은 현 세대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인류에게까지 강도질하는 것과 같다’고 경고한다. 온 인류 중에서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마치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밀은 무비판적으로 남을 따라 하는 ‘기계 같은 인간’을 가장 싫어한다. 자신의 삶을 자기의 뜻과 목표, 취향에 따라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 있다. 설령 그런 결과를 맞더라도,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한 마디로 ‘자기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자유론’의 핵심 철학이다.
그러나 ‘자유론’이 방향이 없는 무원칙한 자유까지도 옹호한 것은 결코 아니다. 밀은 효용(utility)이 모든 윤리적 문제의 궁극적 기준이 된다면서, 이 효용을 ‘진보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항구적인 이익에 기반을 둔 개념’으로 이해한다. 사람을 가장 크고 넓게 발전시키는 것 이상으로 다 중요한 것은 없으며, 자유도 이런 가치와 어우러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밀은 자유의 원리가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회성’에 대해서도 길게 이야기한다. 개별성의 보존과 더불어 인간이 사회 속에서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당위성을 함께 역설하는 것, 이것이 그의 정치철학의 두 기둥이 되고 있다. 밀을 단순히 개인주의자로 분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유론’은 밀 자신의 표현대로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다. ‘자유의 원리’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자유 그 자체’를 무력하게 만들 수도 있는 요소들이 그의 공리주의와 자기발전, 사회성 개념 속에서 적잖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나 이런 지적(知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다원주의와 공동체주의를 비롯, 현대 정치철학의 주요담론과 모두 잇닿아 있는 것도 ‘자유론’이니까 가능한 일인 것이다.
올해는 밀 출생 200년이 되는 해이다. 비판받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자청(自請)하라는 밀의 고언(苦言)은 한국 사회의 지성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와 닿는다. ‘자유론’은 ‘안정을 추구하는 정당과 진보를 주장하는 정당 둘 다 있는 것이 정치적 삶의 건강을 위해 긴요하다. 반대편이 존재하기 때문에 양쪽 모두가 건강한 정신 상태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해준다. 이런 당연한 명제마저 낯설게 들리니 우리의 자화상은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