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정신력이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운동경기는 물론 중환자들의 투병 과정에서도 정신력이 가장 중요하단다. 육체적인 한계를 정신력으로 극복해낸 사례들 또한 무수히 많다. 더구나 육체는 허무하게도 완전히 소멸된다. 당연히 정신은 육체보다 우월하다. 소크라테스가 육체는 번뇌의 근원이며 진리에 대한 사고를 방해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샤오춘레이, 푸른숲)은 이러한 통념이 잘못되었음을 금세 깨닫게 해준다. 육체는 단지 정신을 담는 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놀랍게도 우리들의 육체, 곧 몸을 중심으로 인류의 문명사를 한껏 펼쳐낸다. 이를 테면 머리에 관해 온갖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머리야말로 역사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며 역사 그 자체임을 깨닫게 만드는 식이다.
이를 위해 동원하는 사례들을 보면 저자의 해박함은 박람강기 그 자체다. 머리에 관한 이야기만 해도 불과 13쪽 안에 중세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시작하여 플라톤과 고대 중국인, ‘장자’와 인도네시아 풍속, 갈리아족과 흉노족, 진나라, 심지어 9·11 테러 후의미국 부시 대통령의 발언, 두 얼굴의 신 야누스와 삼국시대의 동탁, 이밖에도 더 있을 정도. 사례들이 동서고금을 넘나들 뿐만 아니라 모두 다음을 예측하기 힘들게 흥미롭고 새롭다. 그러면서도 각각 긴밀하게 연관되며 자연스럽다. 그러면서도 자기 지식을 과시하는 현학으로 거북스럽지 않다. 그야말로 통합적인 사고와 절대적인 표현력을 익히는 데 최적이다.
머리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우리 몸을 샅샅이 들여다보며 이야기한다. 얼굴, 눈, 코, 입, 어깨, 허리, 배, 등, 엉덩이…. 상반신에서 하반신으로, 앞에서 뒤로 짚어가면서 중간 중간에 머리카락, 눈썹, 눈빛, 냄새, 체취 등을 슬쩍 끼워 넣는다. 이는 저자 스스로 ‘세부적인 글쓰기’라고 이름 붙인 글쓰기 방식. 인간의 몸을 부분적으로 응시하면서 인류 문명을 전체적으로 달리 보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저자의 빼어난 통찰력을 즐겁게 확인하면서 자신의 사고를 자연스럽게 확장하고 심화하는 데 있다.
실제로 이 책은 아무 데나 뒤적거려도 생각할 만한 화두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인터넷 세계는 철저한 가장 무도회, 아니 얼굴 없는 무도회라고 할 수 있다.” “얼굴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멀리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눈은 가장 중요한 것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세계를 본다.”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오직 우리 각자의 눈만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배꼽은 우리 몸 중앙에 자리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우리의 기억을 모체로 인도한다.” “고통은 생명을 단순하게 만든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이름으로 육체의 철학 전통을 부정했다. 그러나 육체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력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저자의 도저한 인문정신. 특유의 유머 감각과 함께 어우러지며 이 책을 즐겁고 의미 있게 읽게 하는 결정적인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