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하는 논술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논술에서 금기(禁忌)는 무엇입니까?” ‘논술 잘 하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그게 하루 아침에 됩니까”라던 전문가들도, 이 질문에는 할 말이 많았다. 각 대학의 채점기준은 알고 보면 ‘감점 기준’이다. 채점자들은 응시생들이 취약한 부분을 파고 든다. 점수를 깎는 것, 그것이 논술 채점의 속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논술 답안지에 있어서는 안될 요소, 채점자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일까. 8명의 교수·고교 교사들의 채점·첨삭지도의 경험담을 통해 ‘논술, 이것 만은 피하자’를 정리했다.

도움말 주신 분(왼쪽부터) 강호영 성남고 교사, 권영부 동북고 교사, 김도식 건국대 철학과 교수, 문미향 평촌고 교사.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채점자들이 가장 짜증스러워 할 때는 비문(非文)을 접했을 때다. 눈 앞에는 채점해야 할 수많은 답안들이 쌓여 있는데, 한 답안을 여러 번 읽어 봐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문이 반복해서 등장하면 어떻게 될까. “결국 더 읽기가 싫어지고 평균 이하의 점수를 주고 만다”고 한다.

비문 중에서도 지적을 많이 받는 사례가 주어와 서술어가 따로 노는 경우. 주어와 서술어는 ‘바늘과 실’의 관계인데, 글을 쓰다 보면 호응이 안 맞는 경우가 생기고 의미도 이상해지니 주의해야 한다.

컴퓨터 자판세대라서 그런 지 필체가 좋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읽기 힘들게 흘려 쓴 글씨도 금기 중 하나. 아무리 좋은 내용의 글이라 해도 악필(惡筆)의 답안지를 본 채점자의 첫 반응은 역시 “읽기 싫다”는 것이다.

제시문이 왜 나왔는지 이해 못하면 곤란

제시문을 주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채점의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사고의 방향을 한정할 필요가 있는데, 제시문이 그런 역할을 한다. 제시문을 읽고 마음대로 쓰는 것이 논술이 아니다. 제시문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고 그 범위 안에서 쓰는 것이 논술이다.

출제자들은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세심한 배려를 문제 속에 심어 놓는데 이것을 다른 말로 ‘출제 의도’라고 한다. 출제 의도는 논술 문제의 ‘문두(文頭)’에 표현되어 있다. 문두는 응시자가 따라야 할 사항을 규정해 놓은 글을 말하는 것으로, 반드시 이 지시를 지켜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핵심 논지처럼 보이는 문장들에 줄을 긋고 그 내용을 음미하라. 그러면서 출제자들의 의도를 짐작해 보라. 그런 다음 이를 제시문 속에서 다시 확인하라.

500자 이하는 바로 본론으로

적은 분량의 논술문 작성에 굳이 형식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그럴 때는 서론에 많은 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 “머리와 꼬리를 무시하고 몸통으로 덤벼보라. 형식의 파괴를 두려워 말라.”

또 짧은 논술에도 해결책과 대안을 제시하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자. 문제를 잘 읽고 문제에서 요구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여 문제에서 요구하는 것만 정확히 답하면 된다. 불필요한 내용이 들어가도 감점 요인이다.

늘어지는 문장은 피하라

평가자의 호흡을 고려하여 간결한 문체로 써야 좋은 점수를 받는다. 문장이 길수록 문장 간의 긴밀성이 약화돼 지루해 진다. 게다가 글이 길어지는 만큼 문장을 고치는 과정도 힘이 들고 나중에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물론 긴 문장을 써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필력(筆力)’이 있는 학생이라면 예외다.

자신의 주장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면 경우에 따라서 좌표나 도표, 그래프도 과감하게 동원하는 것도 좋다. 입체화 전략을 채택하라.

뻔한 예시 논거는 ‘여름날의 날파리’

논술 답안의 70% 이상이 상식적인 예시논거로 차 있다고 한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여름날의 날파리처럼 머리 속에 우선 떠오르는 예들을 피하라.” 그렇다고 그런 것들을 완전히 배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논리적으로 적절히 분류하거나 재배치된 예들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렇다고 제멋대로 기발한 것이 창의적인 글은 아니다. 창의성은 형식과 논리가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와중에서 생기는 것이다.

근거 없는 낙관, 막연한 절충은 글의 힘을 뺀다

‘우리 모두가 노력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열릴 것이다’는 얘기는 결국 해결책이 없다는 식으로 보이기 쉽다. ‘노사가 한 걸음씩 양보하여 화합을 이루는 것이 좋다’는 것도 역시 뚜렷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흥분하는 문투도 곤란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믿기지 않는 터무니 없는 사건이다’라는 문장과, ‘합리적인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다’라는 말을 비교해 보자. 차분한 어조로 설득하는 것이 논술이다.

접속사 사용을 줄이자

가급적이면 접속사 없이 문장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굳이 사용한다면 논리를 약화시키는 ‘어쨌든’, ‘하여튼’ 등의 접속어는 피하는 것이 좋다.

고등학생 지식수준을 넘어서는 현학적 용어나 어휘의 사용은 삼가라. 한자성어의 격에 맞지 않은 사용이나, 사상가의 잘못된 인용은 점수를 갉아 먹는다.

지나치게 말하듯이 글 쓰는 것도 조심하라. 잘못하면 문법에 어긋나거나 글의 진지함과 품위를 떨어 뜨린다. 인터넷 상의 용어도 남발되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