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李尙勳)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이 지난 22일 "검찰과 변호사는 법원과 한 배를 탄 동지가 아니다"라는 이메일을 후배판사들에게 보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대법원의 부담이 되고 있다. 이 부장판사의 글을 보고 검찰과 변호사들이 다시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석부장은 이 글에서 "검찰이나 변호사단체가 대법원장의 발언(취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검찰·변협을 맹비난했다. 특히 법원과 검찰, 변호사를 '법조 3륜(輪)'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 "검찰의 상대방은 피의자나 피고인이며 변호사는 당사자의 대리인일 뿐"이라며 "전혀 다른 직역(職域)에 종사하는 판사와 검사·변호사를 법조3륜이라 부르는 것도 달갑지 않은 동료의식을 내세우는 것 같아 유쾌하지 않다"고 했다.
이 수석부장은 이 대법원장의 고교 및 대학 후배로 2001년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올랐으며, 올 8월 서울중앙지법의 형사재판을 총괄하는 형사수석부장에 부임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때 '삼성 에버랜드' 항소심에서 검찰이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며 혐의 입증을 촉구하기도 했다.
형사부 판사님들께 요즈음 대법원장님의 말씀에 대하여 검찰과 변호사단체가 ‘반발’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더니 급기야 검찰총장이 ‘유감’ 성명을, 대한변호사협회는 회장 이름으로 ‘사퇴를 촉구한다’는 터무니없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대법원장님께서 법관과 법원직원을 상대로 말씀하신 것을 가지고 외부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부터가 옳은 일이 아니고, 더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검찰이나 변호사단체가 대법원장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검찰의 상대방은 피의자나 피고인입니다. 어찌 법원이, 법관이 검찰의 상대방이라는 것입니까? 변호사는 당사자의 대리인이거나 변호인일 뿐입니다. 그들의 주된 활동무대 중 하나가 법원일 따름입니다. ‘법조 3륜’이라는 말 자체가 벌써 사라졌어야 합니다. 같은 사법연수원 출신이라 하여 전혀 다른 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달갑지 않는 동료의식을 내세우는 표현 같아서 등기에 그다지 유쾌하지 않습니다. 일반 국민들의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여전히 검찰이나 경찰에서는 조서를 ‘꾸민다’고 합니다. 변호사는 ‘선임’하는 것이 아니라 ‘산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국민들의 의식이고, 그러한 의식을 가지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조서를 진술한 그대로 잘 작성해준다면 어찌 조서를 ‘꾸민다’고 할 것이며, 전심전력으로 나를 도와줄 변호사를 왜 시장에서 물건 사듯이 ‘산다’고 하는 것인지 검찰과 변호사단체는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장검사로 일하다가 퇴직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떤 피고인은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구속한다고 위협해서 사실과 다르게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고 법정에서 주장합니다. 전직 부장검사의 말이라 하여 다 믿을 수는 없겠으나 부장검사였던 사람까지 그런 주장을 하니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공개되지 않고 변호인이 참여하지 않은 조사실에서 조사를 더구나 그 내용을 조서로 꾸며낸 대로 인정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공개된 법정에서 검사와 피고인측의 열띤 생생한 공방을 기초로 재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검사는 수사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기가 수사한 것은 공판정에서의 입증을 위한 자료일 뿐이라는 인식하에 공판정에서의 입증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양형자료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원의 양형이 낮다고 탓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왜 구형량대로 선고가 되어야 하는지를 인증해야 합니다. 변호인이 제출한, 피고인에게 유리한 자료를 반박할 자료를 검사가 제출하지 못하면 그 유리한 자료대로 양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니 검사가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공소장을 법원에 접수시키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 진정한 검사의 역할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수사는 공소유지를 위한 검찰의 준비작업일 뿐입니다. 검사가 그와 같은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재판을 위하여 법관은 검사에게 그와 같은 것을 잘 할 때까지 요구하여야 합니다. 잘못하면 그에 상응한 판결을 하면 됩니다. 변호사는 변호사대로 자기의 할 일만 잘 하면 됩니다. 그러면 당사자의 신뢰를 받습니다. 변호사가 잘못하면 꾸지람은 판사에게 돌아옵니다. 판사는 변호사가 잘못한 것 때문에 질책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판사도 그만 두면 변호사로 일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호사가 판사와 동료의식을 가질 이유는 없습니다. 판사는 변호사와 같은 배를 탄 동지가 아닙니다. 물론 적도 아니지만, 각각의 역할이 전혀 다른 직역에 종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퀴 세 새 중 하나가 아닌 것입니다. 좀 어색한 비유일지 모르나, 세무서와 세무사, 특허청과 변리사가 2륜인가요?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전관예우’입니다. 변호사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돈 많은 피고인은 유능한 변호사를 ‘살’ 것입니다. 그 유능함은 해박한 법률지식과 열성적인 변호활동이지 법관과의 친분이 아닙니다. 법관은 판사 출신 변호사라 해서 배려하지 않습니다. 판사와 친하니까 나를 선임하라는 변호사가 있다면 그것을 잘못된 일입니다. 친해 봤자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법관은 스스로 오해를 받을 만한 재판을 해 왔는지 항상 반성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 탓할 일이 아닙니다. 재판 잘 하면 됩니다. 대법원장님 말씀은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사, 변호사에게는 각기 맡은 일을 잘 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활약하는 법원에서 재판업무에 종사하는 법관들도 덩달아 재판 잘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법관들이 제대로 한다면 검사나 변호사가 ‘유감’이니 ‘사퇴촉구’니 하는 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2006.9.22 형사수석부장판사 이상훈 올림. (이글은 우리 법원 형사부 판사님들께 드리는 私信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