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중남미 이민자)이 백인의 지위를 넘보고 있다. 이들의 인구는 2003년 4000만명을 넘어서면서 흑인을 앞질러 미국 내 최대 소수민족이 됐다. 게다가 최근 구매력이 급성장해 내년이면 흑인들을 추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추세라면 미국이 백인국가가 아닌 히스패닉 국가가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많이 낳고 많이 구매한다
미국에서 히스패닉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가장 큰 요인은 인구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 2003년 미 인구조사국 보고에 따르면 히스패닉은 인구증가율(3.6%)면에서 제일 높았다. 이어 아시아계(3.4%), 흑인(1.3%), 백인(0.8%) 순이었다. 히스패닉은 현재 미국 인구 2억9370만명 중 14%인 4130만명이다. 흑인은 13.3%인 3920만명. 2030년이면 히스패닉은 인구의 25%를 차지할 전망이다.
인구증가율만큼 구매력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4일 미국 조지아대 연구팀은 히스패닉의 올해 구매력이 7980억달러(약 766조원)에 달하고, 내년에는 8631억달러로 흑인 구매력(8470억달러)을 앞지를 것으로 내다봤다. 구매력은 가용 개인소득 중 상품과 서비스 구입에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을 말한다.
히스패닉은 저임금이지만 경기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농업, 세탁, 조경 등의 서비스 분야에 종사, 취업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남으로써 구매력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창업이 크게 늘어난 점도 구매력 상승의 한 원인으로 분석됐다. 1997~2002년 사이 히스패닉 소유 사업체는 31%(다른 인종 10%)나 늘어났다.
◆국가정책에도 영향 끼쳐
히스패닉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들은 경제와 정치 부문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무엇보다 각종 상품광고와 기업 웹사이트는 영어 외에 히스패닉의 공용어인 스페인어 버전을 만드는 것이 기본이 됐다. 올 초 한 음악제작자가 미국 국가까지 스페인어로 바꾸어 라디오로 방송했다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선거광고도 마찬가지. 2004년 대선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 케리 후보가 일부 지역에서 스페인어로 된 TV 선거 광고를 선보였다.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 등 히스패닉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정치인들이 이들의 표에 사활을 걸 정도다. 히스패닉의 결집력은 미국의 이민자 정책 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배경을 업고 정치권에 진출한 히스패닉 인사들도 많다. 부시 행정부에서 장관이 된 앨버토 곤잘러스 법무장관, 칼로스 구티에레즈 상무장관, 헥터 바레토 중소기업청장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히스패닉들은 미국에서 번 돈을 본국에 송금함으로써 본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작년 이들이 송금한 전체 액수는 320억달러에 달한다. 이 중 멕시코 이민자들의 송금만 연간 140억달러에 이른다. 원유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 다음으로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