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각지에서 한강대교 쪽으로 가다 보면 한강로 국제빌딩 뒤로 커다란 건물 5채가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43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시티파크’다. 시티파크는 재작년 3월 분양될 때 청약증거금만 8조가 몰렸다. 아파트 629가구, 오피스텔 141실에 25만명이 청약 신청을 했다. 분양 직후엔 프리미엄이 한때 5억원까지 올라갔다. 시티파크에서 지하철 이촌역까지 사이에도 주상복합아파트인 ‘파크타워’가 들어서고 있다. 두 블록에 40층·37층·23층 1개동씩과 34층짜리 3개동을 짓게 된다. 시티파크와 파크타워의 가치는 북쪽으로 용산 미군기지에 접해 있다는 점이다. 미군기지가 옮겨가면 그 자리에 녹지 공원이 들어선다. 그러면 시티파크와 파크타워 입주자들은 80만평짜리 숲을 발 밑으로 내려다보게 된다. 서울 도심 80만평 땅의 가치는 얼마일까. 서울시가 작년 6월에 뚝섬 서울숲 동쪽의 시유지 1만6000평을 기업과 개인 세 곳에 1조1262억원을 받고 팔았다. 평당 5660만~7730만원이었다. 용산 땅값도 뚝섬 땅값과 비슷한 평당 6000만원 수준이라고 쳐 보자. 그러면 용산의 80만평은 48조원이라는 계산이 나오게 된다. 대략 봐서 50조원이다. 미군기지 터에 공원을 만든다는 것은 50조짜리 땅을 개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원과 숲을 만드는 게 그 땅을 50조에 파는 것보다 가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뉴욕 센트럴파크도 처음부터 센트럴파크는 아니었다. 양떼를 키우던 습지, 나무 몇 그루 없던 황량한 땅을 사람이 울창한 숲으로 만들었다. 150년 전 센트럴파크를 만들자고 제안했던 사람은 “지금 이만한 넓이의 공원을 만들지 않으면 100년 후 뉴욕은 그만한 넓이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라며 시민들을 설득했다. 지금 103만평짜리 센트럴파크엔 찾아오는 새 종류만 270종이다. 우리도 서울에 센트럴파크 같은 공원을 가질 기회가 찾아왔다. 앞으로 수백 년 다시 오기 힘든 기회다. 그런데 그 용산숲, 용산공원을 만드는 작업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주변에 초고층 아파트부터 들어서고 있다. 용산숲 덕분에 주변 지역이 덕을 본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용산숲 가치가 훼손된다면 그건 생각해볼 문제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기호 교수 연구실엔 용산기지 서남쪽 방면에 들어설 초고층 아파트 타운 모형이 실물의 1000분의 1 크기로 설치돼 있다. 그 모형을 보면 시티파크와 파크타워 11개 건물이 용산공원 남단 약 1㎞ 구간을 거대한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다. 40층이면 까마득하게 보이는 높이다. 김 교수가 시뮬레이션을 해봤더니 겨울철에 그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길이가 350m였다. 건물 사이 빈틈으로 햇빛이 겨우 스며드는 식이다. 공원을 산책하는 시민들은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시선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비슷한 일은 35만평짜리 뚝섬 서울숲에서도 벌어진다. 서울시가 작년에 판 서울숲 옆 1만6000평 부지에도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건물 높이 제한이 구역별로 160~250m로 잡혀 있다. 250m면 63빌딩 수준이다. 이 땅은 서울숲 동쪽에 있다. 건물들이 올라가면 서울숲이 아침 나절에 그늘에 갇히게 된다. 도시 장래를 긴 안목으로 내다보는 마스터플랜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법에 어긋나지 않고 규정에 틀리지 않는다고 아무 데나 빌딩 세우고 아무 데나 도로 뚫는 게 아니다. 공원은 공공자산이다. 그 옆에 건물을 세우더라도 공원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지 않게 건물을 배치하고 높이를 적절히 조절했어야 옳은 일이다.
(한삼희·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