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대전 한화-현대전. 7회초 2사서 한화 투수 안영명의 위협구에 몸을 맞은 현대 김동수(사진 왼쪽)가 그라운드에 뛰어올라 난동을 부린 뒤 현대 김시진 코치의 만류로 마운드에서 떠밀려 내려오고 있다. 한편, 빈볼성 투구로 의심받은 안영명(사진 오른쪽)도 심판으로부터 퇴장 명령을 받고 있다.

그라운드 폭력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난 2일 대전구장에서 한화 안영명의 투구에 맞은 현대 김동수가 마운드로 뛰어올라가 어린 후배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는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프로 17년차인 김동수가 흥분한 것은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화는 안영명의 컨트롤 난조로 일어난 실수라고 항변하고 있다. 빈볼은 스포츠맨십엔 분명 위배되는 행동이다. 하지만 가끔 일어나는 빈볼 시비는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하나의 자극제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빈볼은 독버섯일까, 아니면 필요악일까.

흥밋거리…그러나 팬들 그라운드 외면 이유
선수 생명에 위협 자칫 치명적 '흉기'의 대상
대전구장 김동수- 안영명'폭력 시비' 포털검색 1위

'빈볼(Bean Ball)'의 빈은 일반적으로 콩을 뜻한다. 하지만 사람의 머리를 지칭하는 속어로 쓰이기도 한다. 따라서 빈볼은 머리를 향해 던지는 공을 말한다.
투수들은 타자를 위협하기 위해 빈볼을 전략적으로 이용할 때가 있다. 타자는 빈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쓴다. 하지만 시속 140~150km짜리 강속구에 맞으면 이마저도 무용지물이다.
지난 2002년 시카고 컵스의 새미 소사는 피츠버그 투수 살로몬 토레스의 빈볼에 맞아 헬멧이 박살나기도 했다. 또 지난 1920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레이 챕먼은 뉴욕 양키스의 투수 칼 메이스의 빈볼에 맞아 사망한 적도 있다.
따라서 빈볼은 야구에서 가장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규정짓고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빈볼 시비는 계속되고 있다. 동료 타자들이 상대 투수에게 여러차례 공에 맞으면 보복성으로 던진다. 또 야구의 불문율을 어기는 기분 나쁜 타자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벤치로부터 사인이 나올때도 있다. 점수차가 크게 벌어졌는데 도루를 한다든지, 홈런을 치고 나서 지나친 세리머니를 하면 빈볼의 대상이 된다.
타자들은 투수들의 투구폼을 보면 고의적인 빈볼인지, 아니면 공이 손에서 빠져 실수로 던진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 2일 대전구장에서 발생한 현대 김동수와 한화 안영명 사이에 벌어진 빈볼 사태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단어 1위에 오를 정도로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빈볼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두가지 속성이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라는 점에서 팬들에게 일단 환멸감을 준다. 하지만 빈볼로 인해 양쪽 벤치에서 모두 뛰어나와 한바탕 몸싸움을 벌이면 이 역시 묘한 흥미거리가 된다.
빈볼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처럼 규칙만으로는 제재하기 힘든 상대의 매너없는 행동을 징계하는 업계의 효과적인 수단이 되므로 그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선수 스스로가 동업자 의식을 갖는게 빈볼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지름길이라는 것이 야구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과거 폭력 사례
90년 잠실 삼성-OB전 주심 갈비뼈 부러지는 중상
2001년 호세, 배영수에 '핵펀치'
2003년 이승엽-서승화 주먹다짐

빈볼로 인한 폭력 사태는 잊을만하면 한번씩 찾아오는 연례행사다.
사상 최악의 빈볼 폭력사태는 지난 90년 6월5일 잠실구장 삼성-OB전서 벌어졌다. 7회초 OB 투수 김진규가 삼성 강기웅에게 빈볼성 초구를 던진 직후 시비가 붙어 양팀 선수들이 마운드에서 뒤엉키면서 무려 22분이나 경기가 중단됐다. 결국 강기웅 김종갑 박정환(이상 삼성), 조범현 김태형 김진규(이상 OB)등 6명이 퇴장당했고, 강기웅과 OB 이복근은 검찰 소환끝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때 선수들의 시비를 말리던 주심 김동앙 씨는 어디서 날아든지 모를 주먹에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야구팬들에게 지난 2004년 8월5일은 용병 브리또의 '덕아웃 습격사건'으로 기억된다. 당시 SK 용병이었던 브리또는 빈볼에 앙심을 품고 삼성 덕아웃에 난입, 폭력 사태가 일었다. 7회 삼성 투수 케빈 호지스가 브리또에게 볼카운트 0-3에서 등 뒤로 날아가는 위협성 볼을 던졌고 브리또는 이를 응징하기 위해 8회 삼성 공격 도중 방망이를 들고 삼성 덕아웃에서 난동을 일으켰던 것.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SK와 삼성 선수들이 서로 몸싸움을 벌여 사태가 더욱 악화되기도 했다. 후에 알려진 이야기로는 이미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브리또와 호지스는 감정이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2003년 8월9일 밤 달구벌에선 '모범청년' 이승엽(당시 삼성)이 오점을 남긴다. 시즌 초반부터 상대를 자극하는 번트, 고의4구, 사구로 신경전을 벌이던 두 팀은 결국 이날 패싸움이 붙었다. 그라운드 대치 상태에서 이승엽은 분을 삭이지 못해 LG의 '열혈남아' 서승화와 주먹다짐을 벌였다.
2001년 9월18일 마산구장에선 삼성 배영수와 롯데 호세의 악연이 있었다. 경기중 동료 얀이 배영수에게 사구를 얻어맞자 1루에 있던 호세가 냅다 마운드로 달려가 핵펀치를 내질렀고 이를 피할 겨를이 없던 배영수는 안면을 강타당했다. 이 장면은 아직까지도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이 나도는 등 팬들의 뇌리에 박힌 충격적인 기억중 하나다.
판별법은?
고의적 빈볼은 정상적 투구폼에서 유발
던진후 투수들 대처상황에서도 드러나

빈볼의 고의성 여부는 누가 가장 잘 알까. 당연히 공을 던진 투수다.
하지만 피해자인 타자들도 빈볼의 고의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타자들의 빈볼 감별법은 투수의 투구폼이다. 투수가 투구시 팔을 끌고 나오지 못할 경우 대부분 공은 타자의 몸쪽으로 날아온다. 이런 상황에서 공에 맞더라도 타자들은 툴툴 털고 1루를 향해 걸어간다. 실투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의적인 빈볼은 정상적인 투구폼에서 나온다. 몸통의 회전과 동시에 팔을 끝까지 릴리스하면서 공을 몸쪽으로 던지는 것은 백발백중 빈볼이라고 여긴다.
또 빈볼이 나오기 이전까지 상황이다. 지난 2일 한화 안영명으로부터 등쪽에 공을 맞은 현대 김동수 역시 빈볼 직전 몸쪽으로 바짝 붙어 들어왔기 때문에 고의성이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빈볼 이후 마운드로 뛰어올라오는 타자를 맞이하는 투수들의 행동으로도 고의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보복 차원에서 벤치로부터 사인을 받은 뒤에 고의로 빈볼을 던졌을때 투수는 대부분 타자를 향해 응전 자세(?)를 확실히 취한다. '공 맞은 것으로도 부족하면 이번엔 주먹으로 상대해주겠다'는 보디랭귀지는 곧 자신이 고의적인 빈볼을 던졌음을 인정하는 행위다.
실수로 던졌을 땐 당당하게 마운드에 서 있거나 단순히 타자를 피하기만 한다. 하지만 연기를 하는 투수들도 있다. 고의로 던져 놓고 마치 실수였다는 식으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경우도 종종 있다.

(스포츠조선 김태엽 기자)
(스포츠조선 신창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