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축구 스타를 보면 세계적 발레리노들이 떠오른다. 영국의 베컴이나 프랑스의 지단에겐 '백조의 호수'의 지크프리트 왕자 같은 우아함과 진지함이 있다. 프랑스의 앙리는 영락없는 '흑조'다. 앙리처럼 힘을 적절하게 분배하며, 경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선수는 흔치 않다. 그러다가도 어느 한 순간, 폭발적인 속력으로 상대 수비를 교란시킨다. 우리 선수 중에는 박지성과 이천수가 흑조라면, 박주영과 안정환은 지크프리트 왕자다.

포르투갈의 호날두는 발레리노로 치면 베를린 발레단의 블라디미르 말라코프다. 말라코프의 빼어난 신체 조건은 아도니스나 다비드를 연상시킨다. 저돌적이면서 골 감각이 탁월한 영국의 웨인 루니는 발레 '스파르타쿠스'에서 폭발적 에너지를 보여줬던 러시아의 전설적 발레리노 무카메도와 비교된다.

축구는 발레다. 22명의 발레리노(남성무용수)가 출연하는 2막(총 90분)짜리다. 천연 잔디와 골대는 현대적 무대 장치이고, 유니폼은 상징성 강한 의상이다. 축구화는 토슈즈다. 야간 경기 땐 무대 조명 또한 대단하다. '대~한민국!'이 음악이고 음향이다. 축구의 안무가는 물론 감독이다.

브라질의 호나우지뉴의 발리 슈팅은 발레의 레볼타드(revoltade) 동작이다. 오버헤드킥은 발레의 그랑 롱 레볼타드(Grand ronde revoltade)다. 지난 13일 토고전에서 교묘하게 반칙을 유도한 박지성의 환상적인 드리블은 발레의 부레(Pas de bourree)와 쥬테파세 (Jete passe)가 연결된 동작과 같다. 전설적인 무용수 바리시니코프가 선수들을 훈련시킨다면 정교한 동작으로 패스 능력과 득점력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갈등 구조도 닮았다. 우리 팀과 상대 팀이 있는 것처럼, 발레에도 선과 악, 미와 추, 빛과 그늘 등 상반된 가치들로 충돌한다. 그래서 드라마다. 선수들끼리 호흡이 중요하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용수(선수)와 무용수, 무용수와 안무가(감독) 사이에서 의사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공연(경기)은 실패다.

축구에서 현대발레와 가장 가까운 건 세트 플레이다. 고전발레에서는 금기 사항이지만 현대발레에는 '계산된 무질서(우연)'가 있다. 보다 빠르고, 보다 강한 에너지를 요구하며, 특히 군무를 출 때는 즉흥성을 가미한다. 무용수들은 눈짓으로 타이밍만 맞춘다. 예측 불가능이 역동성을 높이고 그때 관객의 쾌감은 배가된다.

현대발레에 한 획을 그은 네덜란드의 안무가 지리 킬리안이나, 스페인의 안무가 나초 두아토에게 축구의 프리킥을 맡긴다면, 환상적인 골이 나올 것이다. 늘 예상을 뒤엎는 군무 때문이다. 파격적으로 강조되는 한 명의 무용수는 코너킥이나 프리킥을 받아 골을 넣는 축구 선수와 흡사하다. 현대발레 역시 지능적 계산, 정확한 타이밍, 치밀한 공간 구성으로 관객을 속인다.

발레도 오래 전부터 멀티 플레이어가 자리잡았다. 세계적인 안무가는 고전발레부터 현대무용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할 수 있는 무용수를 높이 평가한다. 현대축구가 그렇듯이 현대발레 역시 창의력과 순발력, 체력을 요구한다. 베를린발레단 예술감독 말라코프나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주역 마뉴엘 르그리는 대표적인 멀티플레이어다.

장선희 세종대 무용과 교수

유럽의 축구대표팀들처럼 우리 선수들도 발레를 배우는 날이 올 것이다. 유럽이나 남미, 아프리카 선수들에 비해 떨어지는 유연성과 정확성은 발레를 통해 한 차원 끌어올릴 수 있다. 월드컵은 명작 발레만 모인 무대다. '백조의 호수'에서 마법에 의해 백조로, 흑조로 변신이 현란하듯, 안무가 아드보카트의 마법은 프랑스전에서 전세계가 놀랄 일을 만들 것이다. 상대편 선수들을 얼어붙게 만들 환상적인 군무가 벌써부터 머릿속에 그려진다.

(장선희·세종대 무용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