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진 두 장이 있다. 위쪽은 지난 11일 겨울방학 중 임시소집일에 모인 서울 강남 ○○ 중학교 1학년 5반 학생들의 사진. 아래쪽은 지난해 5월 뉴질랜드 세인트메리 초등학교 8학년 학생(중1에 해당)들의 졸업사진이다. 뉴질랜드 사진 속의 안경 쓴 학생은 34명 중 4명. 그 중 2명은 한국에서부터 안경을 썼던 유학생이다. 우리나라 사진 속에는 35명 중 16명이 안경을 썼다. 이날 안경을 벗어두고 온 학생 2명을 포함하면 절반이 넘는다. 뉴질랜드의 4.4배. 무엇이 우리나라 학생들의 눈을 망치고, 한국을 ‘안경의 나라’로 만들고 있는가.
숙제하랴… 게임하랴… 컴퓨터·TV화면 속에 파묻힌 하루
‘18 대 4’. 서울 강남 소재 한 중학교 1학년 한 반(班) 학생 35명과 뉴질랜드 제1의 도시 오클랜드 소재 세인트메리초등학교 8학년 학생 34명 중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낀 숫자는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났다. 무엇 때문인가. 뉴질랜드인과 한국인의 타고난 DNA 차이일까.
뉴질랜드 사진 속의 안경 낀 한국인 유학생 이상훈군. 한국에서 매년 0.2씩 안경 도수를 높였던 이군은 “1년 전 뉴질랜드로 온 뒤 시력 저하가 멈췄다”고 말했다. 본지 특별취재팀이 혹사되고 있는 한국 학생들의 눈 실태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사진 속 한국 학생의 하루
취재팀은 사진 속 취재대상인 서울 강남의 중학생 한 명의 하루 일과를 따라가 보았다. 오전 8시30분, 최강현(14·가명)군의 알람시계가 울린다. 오전 9시부터 학원수업이다.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경에 김이 잔뜩 서렸다.
오전에만 3시간 수업. 책은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하다. 참고서는 교과서 글씨의 약 5분의 4 크기. 1시간20분 수업 뒤 10분 휴식.
오후 1시,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논술학원 숙제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신문기사를 읽고, 줄거리를 옮겨 쓴 뒤 느낌을 적었다. 2시간 동안 컴퓨터 화면을 통해 작은 글씨를 들여다봤다. 인터넷 문서는 교과서 글자 크기의 약 4분의 3.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봐온 인터넷이라 이젠 익숙하다.
오후 3시, 논술 학원에 가려면 아직 2시간 남았다. 친구들과 학원 옆 PC방에 몰려갔다. 지하실에 있는 PC방은 천장 조명이 흐릿했다. 한 번 가면 2시간은 기본. 게임은 잘할수록 더욱 빠진다.
오후 10시, TV를 볼 수 있는 건 이 시간뿐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즐겨 보는 프로그램은 이때 다 하니까. '웃찾사'와 '야심만만'을 거르면 친구들과 대화가 안 된다. 엄마가 "왜 TV(42인치)를 코앞에 앉아 보느냐"고 야단쳤다. 재미있어서 자꾸 앞으로 가다 보면 어느새 TV 1m 앞에 앉아 있곤 한다. 전문가 권고 42인치 TV 시청거리는 5m 안팎. 밤 12시, 이제 자야 한다.
◆뉴질랜드 학생의 하루
사진 속 뉴질랜드 학생의 하루는 많이 달랐다. 오전 6시, 코너 레슬리(Conor Leathley·14)군의 알람시계도 울렸다.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파파쿠라(Papakura)에 있는 학교에 가려면 30분이 걸린다. 인구 100만명 사는 뉴질랜드에서 제일 큰 도시라지만 오클랜드 도심에서 10분만 나가도 풀빛이다.
오전 9시, 수업 시작이다. 몇 달 전만 해도 30분 동안 달리기로 수업을 시작했는데, 체육선생님이 그만둔 뒤론 달리기가 없어졌다. 아이들은 잔디 깔린 보텀필드(Bottom Field·운동장 이름)에서 맨발로 달리는 걸 좋아했다.
1시간30분 수업에 30분간 휴식이다. 30분 동안 아이들과 신나게 럭비공을 던지고 놀았다. 오후 3시 수업이 끝났다. 엄마가 5시에 데리러 올 때까지 '애프터스쿨케어(After School Care)' 프로그램에 참석한 뒤, 집에 돌아오니 오후 6시. 1시간 동안은 숙제시간.
숙제를 마치고 한창 TV를 보고 있는데 오후 9시가 됐다. 자야 할 시간이다. 9시 가까워지면 TV에는 어른들 프로그램만 나온다. 입학 전부터 이 시간은 반드시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다.
◆환경적 요인이 중요
전문가들은 우리 아이들의 시력이 뉴질랜드보다 더 나쁜 이유로 우선 '인종적 유전'을 꼽는다. 유럽과 북미보다 동아시아, 스칸디나비아에서 근시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하지만 인종적 요인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오클랜드의 밥 모피모어(Morpimore) 신부는 "뉴질랜드 아이들의 시력이 좋은 건 이르면 오후 7~8시쯤 자고 아침 5~6시쯤 일어나는 생활습관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클랜드 대학 한인학생회장인 이준영(23)씨는 "한국보다 책, TV, 컴퓨터를 덜 하고, 야외활동을 더하는 게 시력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
(안준호기자 liba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