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저는 오늘밤 위대한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인 여러분들께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베트남전 반전 시위가 한창이던 1969년 11월 3일,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저 유명한 '침묵하는 다수' 연설을 했다. 1968년 미 대선 때 닉슨은 베트남에서 철군할 비밀계획이 있음을 내세워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당선 후 닉슨은 급작스런 철군은 미국의 리더십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철군을 미뤘다.
반전시위가 격렬하게 번져 나갔다. 1969년 10월 말 25만명의 시위대가 워싱턴에서 즉각적인 베트남 철군을 외쳤다. 곤경에 처한 닉슨은 TV 연설에서 당장 철군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반전 시위대의 기세에 눌려 자신들의 의견을 맘껏 펼쳐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선거 때 닉슨을 밀었던 보수·공화당 유권자들이 거센 반전의 물결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던 것이다.
놀랍게도 침묵하는 다수는 정말 있었다. 그들이 닉슨의 부름에 응답했던 것이다. 그날 밤 백악관 전화통은 닉슨을 지지하는 전화로 불이 났고, 며칠 동안 약 8만 통의 응원편지와 전보가 날아들었다. 닉슨은 훗날 그 연설이야말로 자신의 정치생명을 구한 승리연설이었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목소리가 큰 소수'의 힘을 상징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크로퍼드 목장 앞에 이라크전에서 전사한 아들을 둔 엄마가 1인 반전시위를 시작했다. 신디 시한은 여름 내내 목장 앞에서 반전 메시지를 전파하며 국제적인 스타가 됐다. 미국에서 반전시위가 몇 년째 계속되는 상황에서 그의 메시지가 새삼 더 마음에 와 닿을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전시(戰時)'임을 강조하면서도 목장에서 긴긴 여름휴가를 보내던 권력자와, 목장 밖에서 고군분투하며 정당한 분노를 발산하는 엄마의 대조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만들었다. 허밍처럼 낮게 울려 퍼지던 반전의 합창 속에서 갑자기 찢어질 듯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온 것처럼 힘이 있었다.
시한의 주장은 30여 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24시간 뉴스채널과 블로그와 인터넷을 통해 증폭되었다. 이를 계기로 밀리기 시작한 부시는 몇 달 후 지지율 최저를 기록하게 된다. 민주당이 몇년 동안 해도 못한 일을 단 한 명의 설득력 있는 목소리가 해냈던 것이다.
2004년 대선 때도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베트남전 무훈을 거짓이라고 공격하는 데 앞장섰던 '진실을 위한 쾌속정 참전용사들' 회원 2명이 케리의 몰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부시는 시한을, 케리는 쾌속정 참전용사를 '극렬한 의견을 가진 일부 소수의견'이라고 얕잡아 보다가 큰코다친 경우다.
사실 '침묵하는 다수'는 오랫동안 '개발되지 않은 금광'처럼 매력있는 정치적 환상이었다. 침묵하는 다수가 평소에 자신의 의견을 떠드는 일은 없지만, 언젠가 결정적인 순간에 분연히 일어나 '다수의 의견은 달랐음'을 증명해줄 것이라는 환상.
최근 미국 정치에서는 침묵하는 다수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례보다는 '시끄러운 소수'가 새로운 매체와 결합해 여론의 흐름을 주도하는 경우가 더 자주 눈에 띈다. 요컨대 늘쩍지근한 '침묵하는 다수'를 믿고 뭔가 도모하기는 어려운 시대인 것이다. '침묵하는 다수'란 마치 젖은 성냥만 한 가득 들어있는 성냥통처럼 가망 없는 집단이 되었다. 자, 이제 '침묵하는 다수의 시대'는 가고, '시끄러운 소수의 시대'가 왔다.
입력 2006.01.01. 23:18업데이트 2006.01.02.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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