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둘, 여자 하나가 지하철 선로에 추락해서 사망하는 이야기다. 닷새 동안 같은 장소에서 세 사람이 죽는다. 일순간에 인간의 삶을 휘뚝휘뚝 전환시키는 유쾌한 악마들이 소리 죽여 낄낄댄다. 그 악마들은 어깨 위에도 올라 있고, 겨드랑이에도 끼어 있다.
자폐증 딸아이를 가진 동화번역가가 첫 등장인물이다. 그녀는 두통과 이명에 시달리던 끝에 달려오는 지하 열차에 뛰어든다. 기관사는 "자살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러한 표정과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기관사는 그녀의 죽기 직전의 표정에 대해 '부드럽고 우아했다'는 표현까지 쓴다. 그때 여자의 남편은 같은 학과에서 일하는 선희라는 조교와 함께 서해안에 있는 한 콘도미니엄에서 비밀스러운 밤을 보내러 갔다가 아내의 사망 연락을 받는다. 7월 하순 화요일 밤이다.
밤 구름 몇 점은 희미하게 떠 있고, 난데없는 비둘기들이 떼를 지어 건물 옥상에서 옥상으로 날아다닌다(61쪽). 음산하다. 정직하다. 경제적이다. 소설문학의 새로운 힘 같은 것일까. 간결한 문체가 고혹적이다. 연결고리를 의식적으로 끊어내는 문장의 상처가 입안 가득 기분 좋은 피비린내를 풍긴다. 독자들에게 경쾌한 리듬의 뜀뛰기를 권유하는 상징들이 등골을 서늘하게 애무한다.
여자는 죽기 전날에도 남자와 섹스를 했다. 여자는 섹스가 끝나고 남자의 살이 빠져나간 다음에 혼자서 자위를 한다. 혼자서 하는 오르가슴이다(32쪽).
사고 기관사는 운전실 유리창에 늘러 붙은 죽은 여자의 눈동자를 견디지 못하고, 사고가 났던 같은 장소에서 이틀 뒤에 자살한다. 그 기관사의 대학동창들이 장례식장에 모인다. 죽은 기관사의 옛 애인과 친구는 10년 만에 만나는 셈이다. 그들은 약물의 힘을 빌어 모텔에서 세 번의 관계를 갖는다. 10년 전 남자는 여자의 벗은 몸만 보면 말을 들어주지 않는 성기 때문에 '사내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여자는 성기가 단단한 것보다 몸을 다정하게 껴안는 것을 선호했음에도 그러했다.
모란 모텔을 나와 그렇게 헤어지던 토요일 새벽 그들은 트레이닝복 차림의 청년이 같은 장소의 선로에 밀쳐져 숨지는 것을 목격한다. 과실치사 혐의자로 몰릴 것을 직감한 그들은 황급히 현장을 떠난다.
삶이란 밀착할수록 비루해지고 떨어질수록 쓸쓸해진다. 그 비감조차 지겨워질 때 비로소 군상들의 허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 삶은 흉물스러운 것이다. 철거 직전의 재건축 아파트처럼 말이다. 죽음이란 가장 흔한 일이다. 남자는 동화번역가인 아내가 죽자 그녀가 키우던 치와와를 베란다 밖으로 던져 죽인다. 기묘한 쾌감이 그를 간질인다(159쪽).
세 건의 죽음은 서로 관계가 있고, 서로 관계가 없다. 동화번역가가 죽자, 그 사고 열차를 운전하던 기관사가 정신적 후유증을 못 이겨 자살을 하고, 그 기관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옛 동창 중 한 커플이 10년 만의 해후를 만끽하며 밤새 섹스를 하고, 그들이 새벽에 지하철에 들어섰다가 순간적인 충돌로 청년 하나를 선로에 밀쳐서 죽게 만든 것이다.
작가는 1994년에 등단한 시인이다. 이번에 이 작품으로 제3회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았다. 소설 제목에 나오는 '칼로'는 17세기 프랑스 판화가 자크 칼로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