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선 고구려연구재단 발해사연구팀장

크라스키노(Kraskino)는 러시아 연해주 남단의 작은 마을이다.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동남쪽으로 약 280㎞, 북한의 두만강이 약 60㎞,그리고 중국의 훈춘시가 약 40㎞ 거리에 있다. 1860년 한국인이 처음으로 이주했던 크라스키노는 1909년 안중근 의사가 단지(斷指) 동맹을 결성한 독립운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은 그 옛날 고구려의 영역이었고,고구려를 계승한 발해 시기에는 오경(五京)의 하나인 동경(東京)의 관할이었다. 마을에서 동남쪽으로 약 3㎞ 거리에 있는 크라스키노 성(城)이 동경 아래 염주(鹽州)의 소재지였고, 인근에 있는 포시에트는 발해가 일본과 왕래하던 항구였다.

바로 이 크라스키노 성은 오늘날 동아시아 '역사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동안 러시아는 발해 유적을 말갈과 여진족의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한국과의 공동발굴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발해 문화가 고구려와 유사하고, 혹은 계승한 것이라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둘레 1.2㎞, 내부면적이 13만㎡에 이르는 크라스키노 성은 연해주에서 가장 넓은 평지성이다. 자연지형을 이용한 성의 배치나, 성벽과 우물을 돌로 축조하고, 성벽에 옹성(甕城)과 치(雉) 등의 방어시설을 만든 것 등은 고구려와 유사하다. 기와·토기·철제품 등 역시 그 연원이 고구려에 있다는 것에 러시아 학계도 동의하는 바다.

한국은 2004년부터 고구려연구재단이 러시아와 협정을 맺고, 지난해에 이어 금년 8월에도 공동발굴을 했다. 이를 통해 무게가 60~70㎏에 달하는 철 찌꺼기인 대형 슬래그와 온돌이 발굴되는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우리 민족 특유의 난방시설인 온돌은 'ㄷ' 자형으로 길이 14m가 넘는 발해시기 최대 규모로 판명됐다.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라는 것을 물질문화를 통해 분명히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동북공정'을 추진 중인 중국도 이곳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에 중국 내의 발해 유적을 공개하는 대신 자신들이 연해주 발해 유적 발굴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크라스키노 성을 지목하고 있다. 또한 이미 1998년에 이곳에 슬그머니 들어온 일본은 동쪽 성벽 발굴을 마치고, 현재 핵심 발굴 지역인 성터 내부 발굴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이렇게 크라스키노 성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은 발해 문화가 당(唐) 문화의 '판박이'에 불과하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고, 궁극적으로 러시아의 지지를 얻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일본은 발해가 '일본에 조공한 속국'이라는 억지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흔적을 성터 발굴을 통해 찾으려 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발굴 작업은 당연히 크라스키노 성을 중국사나 일본사적인 입장에서 해석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발해사를 둘러싸고 크라스키노 성에서 중국·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크라스키노 성 앞의 바다는 러시아말로 '엑스페디치야(탐험)' 만(灣)이라고 한다. 수수께끼 왕국 발해에 대한 한국의 '탐험'이 더욱 치열하게 계속되기를 크리스키노 성은 열망하고 있다.
(임상선·고구려연구재단 발해사연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