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방학 중인 미국 고등학생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하나,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자리잡은 P 입시전문 사설 학원.

다닥다닥 붙은 강의실에서 고교생들이 최근 '작문' 파트가 추가된 새 SAT(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해 논술 강의를 듣거나 개인교습을 받고 있었다. 비용은 시간당 5만~100만원까지 천차만별. 학원측은 "올 3월 SAT가 개편된 이후 학원 수강생이 20%쯤 늘었다"고 밝혔다.

둘,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대학 교정.

전국 각지에서 아이비리그(동부 8개 사립 명문대) 순례 관광을 온 고등학생과 학부모들 무리가 심심치 않게 보였다. 이들은 교내 게시판에 붙은 '지원 에세이 개인교습' 광고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하버드 재학생이나 졸업자들이 낸 광고다.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한 남학생은 "SAT를 잘 봐도 에세이가 더 결정적이거든요.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라며 과외선생의 전화번호를 적어 넣었다.

학교 앞 대형서점에는 하버드대 학보사인 '하버드 크림슨'이 신입생들의 에세이 50편을 분석한 책 '그들은 어떻게 하버드에 입학했나'가 계산대 옆 황금 코너에 쌓여 있었다. 3년 전 세계적 히트를 친 '하버드 입학 성공 에세이 50'의 제2탄이다.

대입(大入)을 겨냥해 글쓰기 실력을 키워준다는 입시학원들과 고액 과외가 성업하고 각종 에세이 수험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미국에도 '논술태풍'이 불고 있다. 대학입시에 필요한 글쓰기가 대학자격시험 작문과 대학별 지원에세이로 이원화되고 요구 수준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SAT는 기존에 주로 철자와 문법을 묻던 형태에서 3월부터 교과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을 묻는 '바칼로레아'식으로 바뀌고 배점도 높아졌다. 또 다른 대학자격고사인 ACT(American College Test)도 작년부터 작문을 선택과목으로 추가했다.

맨해튼 P 학원의 크리스틴 파커 박사는 "교과지식을 단답식으로도 묻고 이를 현실과 연계시키는 능력을 보기 위해 작문시험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학생들이 주장과 근거를 논리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을 가장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새 SAT가 순발력과 판단력을 평가한다면 대학별 지원에세이는 학생 개개인의 개인적 성향과 인성, 학문적 열성 등을 평가한다. 500~600단어에 지나지 않는 대학 지원 에세이에 학생들은 수개월의 공을 들인다.

'하버드 에세이' 성공론을 연달아 내고 있는 하버드 크림슨 편집장 로라 슈커(21)씨는 "평범한 자기 소개로는 입학정원의 10배에 이르는 지원서에 파묻혀 있는 전형 담당자의 눈길을 끌 수 없기 때문에 지원자들이 점점 더 독특한 주제와 스타일을 개발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최고의 여자 명문 대학인 스미스 칼리지의 입학사정관 카렌 크리스토프 교수는 "시험점수나 프로필이 아무리 좋아도 대학이 원하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는 에세이가 가장 정확한 자료"라고 말했다. 상향 평준화되고 있는 자격시험과 엇비슷한 내신점수로는 변별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세계 60개국 출신의 학생들이 다니는 이 대학에서는 각 나라의 교육환경을 감안해 에세이를 평가한다고 한다. 크리스토프 교수는 "한국 학생들의 에세이는 대체로 주제나 스타일이 한정돼 있어 글을 자유롭게 많이 써본 경험이 적다는 느낌이 든다"며 "우수한 성적과 학문적 열정을 가능성으로 보고 뽑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