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부터 72년까지 FBI 국장을 지낸 에드거 후버는 도청장치로 포착한 '비밀파일'을 이용해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후버는 1960년대 중반 흑인 인권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묵는 호텔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게 했다. 모두 19개에 이르는 도청테이프엔 킹 목사의 혼외(婚外) 관계, 백인과의 성적(性的) 관계도 담겼다고 한다. 후버는 테이프 복사본과 함께 '자살하지 않으면 테이프를 공개하겠다'는 협박편지를 킹 목사에게 보냈다.
▶후버는 대통령이 싫어하는 인사들의 도청자료를 대통령에게 제공하곤 했다. 존슨 대통령은 기분이 울적할 때마다 킹 목사 테이프를 들었다고 한다. 정적(政敵)이나 유명인사의 약점과 치부를 엿보면서 권력자는 묘한 웃음을 지었을 법하다. 김영삼 정부 당시 불법 도청 테이프가 화제가 되면서 'YS는 누구 테이프를 들었을까' '들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 국가안보 보좌관은 늘 주변을 의심했고, 도청을 통해 그런 불안을 달래려 했다. 극비리에 추진한 군사작전이 언론에 새나가자 가까운 보좌진이나 친구 명단까지 FBI에 넘기고 도청을 지시했다. 닉슨을 탄핵으로 이끈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은 이런 편집증적 피해의식 속에서 싹텄다.
▶도청보안 전문가 안교승씨는 "장관, 대기업 오너, 검찰 간부 같은 유력 인사들을 고객으로 접해 보니 대부분 도청 공포증이 있었다. 사무실에서 마음 놓고 한 마디도 못하더라"고 했다. 안씨는 김대중 정부 때,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로 상담 요청을 받았다. 약속장소에 나갔더니 의뢰인이 다시 전화를 걸어 와 "장소를 바꾸자"고 했다. 바뀐 장소에 나타난 의뢰인은 안씨를 야외 벤치로 데려갔다. 그는 총리실 직원이었다. "총리실에 도청장치가 있는지 점검해 달라. 이 일은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안기부 X파일을 생산해낸 도청팀장 출신 모씨는 인터뷰에서 "정치인치고 돈 안 받은 사람은 없다"고 했다. "내가 입을 열면 안 다칠 언론사가 없다"고도 했다. 도청으로 유명인사들 마음속을 들여다 보고 나면 '세상 사람이 다 내 손아귀에 있다'는 '빅 브라더' 심리가 생겨나는 모양이다. X파일 파문으로 한쪽에선 도청 공포증이 확산되고, 그 반대편에선 "내가 입만 열면…"이라는 공포탄들이 터지고 있다. 밥집, 술집에서도 '입조심, 말조심'을 되뇌야 하는 세상이다.
(김창균 논설위원 ck-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