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로프스크에서 캄차카까지 가는 러시아민영항공은 출발을 세 시간씩이나 지체한다.
땡볕에 딸기깔따구가 극성을 부리는 중에 트랩 밑에 세워놓고 또 30여분을 대기상태다. 놀라운 것은 러시아인들의 얼굴이다.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체념 같은 것. 거기엔 이미 전함(戰艦) 포촘킨이나 아브로라의 동궁(冬宮)폭격의 굉음과 섬광 따위는 그림자도 없다. "10월 혁명요?" "그게 뭐죠?" 마치 이렇게 묻는 듯한 그들의 그 얼굴이 과연 어떻게 동아시아 태평양 신문명을 받아들여 미구에 동북방의 거대한 지구문명으로까지 완성시킬 수 있다는 걸까?
출발 뒤엔 한술 더 뜬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오후 1시 30분인데도 기내식(機內食) 서비스는 아예 없단다. 짜증이 났다. 도대체 나는 왜 캄차카에 가는가? 성난 내 눈 안에 옆자리의 한 러시아인 노파가 읽고 있는 안나 아흐마토바 시집의 표지 사진이 들어왔다. 그러나 사실로 들어온 것은 안나가 언젠가 박일(朴一) 선생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말로 번역했다는 그 한국시집의 환영이다.
기실, 캄차카는 '12월당원'(근대의 러시아혁명가그룹) 유형 이후 내내 러시아 백인에게조차 하나의 내상(內傷)의 자리 근처에 지나지 않았고 원주민에겐 단지 식민지일 뿐이었으니 유라시아에서 유럽을 뺀 나머지 아시아의, 그것도 변방인 것이다. 그 변방인 엘리조바공항에 도착했더니 여권을 압류하고 화물을 내어주지 않는다.
아아.
도대체 나는 왜 캄차카에 왔는가? 그러나 하루가 지난 오늘 오후 그 대답이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한다. 페트로파블로프스크항구의 풀언덕 미센나야쇼브카에서 바라본 아바차 만(灣)의 전경(前景)으로부터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렇다. 그것은 또 하나의 이슈쿨 호수였다. 흰 눈 덮인 톈산산맥의 연봉을 배경으로 한 키르기스의 저 성스러운 호수 이슈쿨 말이다. 화산(火山) 빌류친스크가 거느린 긴긴 흰 눈의 산맥 아래 아바차 만은 호수처럼 잠들어 있다.
어디 가까운 물가에서 갑자기 졸본성(卒本城)이 나타나고 신시(神市)가 열려 시끌벅적한 '바자르'가 곧장 벌어질 것만 같다. 원주민인 이텔멘족이나 코리악족의 심층 무의식 안엔 분명 눈 쌓인 산상호수가 잠들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아직은 제 대답이 아니다. 빔차의 굿판에 끼어 샤만 비에라를 만나기 전까지는.
맑은 시냇가에 우뚝우뚝 장승이 선 솟대며 온갖 춤, 갖은 북소리에다 고수레까지도 내 몸과 마음에 낯선 신바람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만큼 익숙했다. 지친 내가 슬며시 버스로 돌아와 앉아 있을 때 그녀가 내 앞에 와 우뚝 섰다.
"캄차카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텔멘족의 샤만 비에라 고베니크의 첫마디다.
"당신 발에서 말의 기운이 느껴진다. 큰 장수로구나." 두 번째다.
"앞으로 건강해질 것이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겠다." 세 번째다. 그러고는 슬픔이었다.
"우리는 자기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 멸망이 멀지 않다. 정부가 보호해줬으면 좋겠다. 당신이 여기 와주어서 참으로 고맙다."
비로소 나는 내가 왜 캄차카에 왔는지를 뚜렷이 알았다. 역시 동북방의 곤괘(坤卦)였던 것이다. 나는 그 곤괘인 비에라에게 강증산(姜甑山)의 부적, 닭머리를 선물삼아 그려주었다. 닭머리는 동북방에서 떠올라 정동쪽의 대개벽의 여명을 반사하는 첫별 자리이기 때문이다.
(김지하 시인·사단법인 생명과평화의길 이사장)
입력 2005.07.17.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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