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권위 있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모두 12개의 한국 관련 어휘가 실려 있다. 김치 한글 양반 막걸리…. 그 중 하나가 온돌이다. “아궁이에서 방바닥 밑으로 난 통로를 통해 방을 덥히는 난방”이라는 게 사전의 뜻풀이다. 고대 중국에는 토상(土床·흙 바닥 침대)이 있었고 로마시대에는 방바닥에 관을 묻어 열을 전달하는 히포카우스툼이 있었다. 모두 온돌 같은 바닥 난방 방식이다. 그런데도 옥스퍼드 사전이 온돌(ondol)이라는 한국말을 그대로 표제어로 실은 것은 온돌이 한국의 독창적 난방문화라는 걸 인정했다는 뜻이다.

▶온돌이 우리 민족의 주거생활에 도입된 것은 2000년쯤 전이라고 한다. 왕으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이 어느 집에서나 똑같은 난방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온돌이 유일하다. 온돌은 순 우리말로 ‘구들’이라고 불렀다. ‘구운 돌’의 준말이다. “구들장이 펄펄 끓는다” “구들에 몸을 지져 보자”는 말 속에는 단순히 물리적 온도를 뛰어넘어 한국인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우리네 조상은 온돌 아랫목에서 태어나, 거기서 가족들과 살을 부비며 살다가, 끝내 아랫목에서 삶을 마감했다.

▶아파트가 지배적 주거 양식으로 자리잡으면서 전통적 온돌도 주변에서 사라졌다. 온돌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민속촌 아니면 궁궐이었다. 그나마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탓에 대부분 ‘죽은 과거’로서 관광의 대상이 되는 데 그쳤다.

▶엊그제 창덕궁 영화당 아궁이에 불을 때는 행사가 있었다. 참나무 숯 한 무더기에 불을 붙인 지 15분 만에 굴뚝에서 맑은 연기가 피어 올랐고, 한 시간 만에 방바닥에 온기가 돌았다. 이번 불넣기는 장마철 습기를 없애기 위한 시험 가동이었지만 창덕궁 관리소는 내년부터 궁궐 온돌에 불을 지피고 사람들이 방 안에 들어가 온돌의 훈훈함을 체험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한다.

▶창덕궁은 세계 유산에까지 지정돼 있는 귀중한 문화재인 만큼 화재나 사고 예방에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그렇긴 해도 아무도 사는 이 없어 썰렁하던 궁궐에 온기가 돌아온다는 소식은 역시 반갑다. 문화재에 따라선 무조건 접근 못하게 하고 보호만 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계속 사용하고 제 기능을 하게 함으로써 그것을 살아있는 문화재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 창덕궁 구들에 온기가 돌아오는 것은 1926년 순종 임금 승하 후 80년 만이다. 사람들 마음이 훈훈해지는 일들도 많았으면 좋겠다.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