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해인사가 한국 미술사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9세기 후반 무렵(883년)에 조성된 목불(木佛)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법보전에 모셔진 비로자나 불상만 발견되었지만, 이번에 대적광전의 비로자나 불상도 역시 9세기 후반에 같이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시기와 형태가 모두 같은 쌍둥이 불상인 것이다.

사진으로 볼 때 이 쌍둥이 비로자나 불상의 가장 큰 공통점은 수인(手印)이 똑같다는 점이다. 두 불상 모두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오른손 손바닥으로 감싸 안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수인을 지권인(智拳印)이라고 한다. 불상의 수인은 형태에 따라 그 의미가 각각 다르다. 예를 들면 오른손 손바닥을 펴서 들고 있고 왼손을 펴서 무릎 위에 얹고 있는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은 '불안을 없애주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지권인은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다. 번뇌가 바로 깨달음이다'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둘이 아니다'라는 불이사상(不二思想)을 압축하여 수인으로 표현한 것이 지권인이다. 화엄사상(華嚴思想)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번뇌는 주관과 객관, 물질과 정신, 생과 사, 나와 너, 안과 밖을 나누어 보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별(分別)이 사실 알고 보면 '둘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모든 스트레스와 번뇌는 둘이라고 나누어 보는 데서 시작된다. 분별해서 보면 반드시 '긴장'(tension)이 따르기 때문이다. 범부들은 삶의 긴장으로 인해서 뒷목이 뻣뻣한 것 아닌가. 지권인은 '분별하지 말라! 긴장하지 말라! 둘이 아니다!'라는 철학을 손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권인의 형태는 주로 비로자나 불상에서 발견된다.

비로자나는 범어(梵語)인 '바이로차나(Vairocana)'의 음사로서, 광명이 두루 비춘다는 '광명편조(光明遍照)'의 뜻이다. 이 광명편조를 설명하는 경전이 바로 화엄경 11권의 '비로자나품(毘盧遮那品)'이다. 해인사는 '화엄십찰(華嚴十刹)'에 포함될 만큼 화엄사상에 바탕해서 창건된 절이다. 그래서 비로자나 불상이 많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용헌·goat135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