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시와 소통하지 못하는 고립된 개인이 마지막에 의존하는 것은, 결국 두 가지가 아닐까. 식욕과 성욕. 충무로의 중견 박철수 감독의 관심도 이쪽으로 수렴된다. 황신혜의 섹스와 거식증을 다뤘던 '301, 302'(1995)와 성 논란의 서갑숙을 캐스팅했던 '봉자'(2000)에 이어, 그는 예의 집요한 관심을 다시 한 번 변주한다. 소재는 이혼한 여인과 갓 성인식을 앞둔 소년의 사랑. 5년 만의 복귀작 '녹색 의자'다.
박철수 감독은 열아홉 서현(심지호)과 서른두 살 문희(서정)에게 성(性)의 악기를 연주하게 만든다. 가정이라는 제도에서 일탈한 여성과 사회로 편입되기 직전의 남학생을 짝 지은 영화는 섹스라는 언어가 가진 소통 가능성, 그리고 미성년자의 자유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어느 정도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고 진지한 문학 텍스트처럼 초지일관 심각한 것은 아니다. 종종 유머와 위트를 섞은 블랙코미디 감성이다.
'역 원조교제'로 수감된 문희는 '사회봉사 100시간' 명령을 받고 풀려나지만, 마중나온 서현과 함께 다시 여관으로 기어들어가 섹스와 식사로 밤낮을 소비한다. 이후 문희의 친구인 진아(오윤홍)가 자신의 도자기 공방(工房)을 두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제공하고, 세 사람은 기이한 동거를 시작한다. 이 '불륜 커플'을 뒤쫓는 형사와 기자들의 행태는 코믹하게 그려진다. 저주받은 주홍글씨를 이마에 새긴 커플은 서로의 육체를 통해 삶의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스크린은 이들의 강도 높은 정사를 충실하게 전달한다. 세 사람의 이해하기 힘든 동거도 주목 대상이다.
흥미롭게 진행되던 영화는 후반부 스크린에 연극 무대를 설치하면서 뜨악한 물음표를 던지게 만든다. 스무 살을 맞아 서현의 성인식 파티를 열고, 문희의 전 남편, 서현의 부모, 서현을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는 여자친구, 형사와 기자 등 관련자 모두를 초대한 것. 그리고는 각자의 입장에서 이 커플의 사랑을 어떻게 봐야 할지를 발언하게 하는 것이다. 연출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감독의 '계몽' 의지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서정과 오윤홍은 원래 자신들이 보유한 각자의 일탈적·중성적 이미지를 충실하게 재현하면서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신인인 심지호의 귀엽고도 발랄한 연기가 기대 이상의 큰 매력을 던진다. 10일 개봉.
입력 2005.06.09. 18:18업데이트 2005.06.1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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