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대 나온 페미 맞지? 빨리 실토해라." "이대 나온 페미○! 여성부에나 취직해라."
얼마 전 버스나 지하철에서 다리 벌리는 남자들에 대해 칼럼을 쓴 후, 남성 독자들로부터 상당한 양의 이메일을 받았다. "수컷 원숭이와 남성을 동일 비교함으로써 남성들에게 불쾌감을 주었다", "남성을 공격함으로써 여자들이 얻을 것은 없어 보인다"는 내용을 차분하게 써준 독자들이 계셨다. 칼럼 분량의 5~6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긴 글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토록 길고 논리적인 글을 쓰는 데 들였을 시간과 수고를 생각하니 말이다. 진심이다.
그러나 큰 잔상을 남긴 건 "이대 나온 페미○"이라는 표현이었다. 굳이 밝히자면, 여대 출신도 아닐 뿐더러,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페미니스트 등 일련의 '~스트'의 반열에는 끼어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테러리스트나 아나키스트가 아닐진대 굳이 '실토'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주로 이런 표현을 쓴 남성들은 '엉덩이 들이밀기 하는 암컷도 있다―암컷들은 후배위를 좋아하냐―그런 ○들을 다 모아서 군대에 처박자' 같은 논리로 일관한다. 우리의 일부 젊은 남성들(메일 보내신 분들의 문체와 내용을 보면 말이다)의 논리에 따르면, 군가산점 위헌소송 등 '남자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게 바로 이대를 중심으로 한 여대 출신이고, '페미니즘'은 남성의 권익을 박살내지 못해 안달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여권 신장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세대 차이가 있는 것같다. 남성중심, 가부장제의 혜택을 누렸고, 여성에 대해 일종의 '부채감'을 갖고 있는 아저씨 집단보다 여성주의자들을 더 자주 목격한 젊은 집단에서 일종의 '페미니즘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불쾌한 감정 혹은 피로감을 '이대 나온 페미○' 식으로 집단화, 표적화하는 방식이다. 더 큰 문제는 여성에게 치명적인 욕설을 퍼부어 대는 것이 여성의 입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초적 발상이다. 그건 진정으로 낡은 남성적 방식이다.
바로 이런 모습 때문에 '페미'의 유효기간은 더 길어질 것 같다. '이대'가 아니라 '육사 나온 페미'가 탄생할 그날까지. 쭈욱~.
(엔터테인먼트부 zeen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