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 ‘난 너와 자기 싫어’라고 말하면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섹스를 맛보겠지만,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하면 다시는 그와 잘 수 없을 거야.” “백악관에 좀 더 잘 생긴 남자를 보내야 해. 닉슨을 봐. 아무도 그와 섹스하지 않으니까, 그 사람이 아무하고나 하는 거잖아.” 이런 맹랑한 대사가 나오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는 수십년간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 1998년 미국 케이블 HBO를 통해 처음 방송된 후, 이 드라마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까지 자신의 성적 경험을 털어놓는 것이 ‘쿨’한 것이라는, ‘불손한’ 철학을 만들어냈다. 세상은 벌컥 뒤집혔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사랑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은 남자가 아닌 구두나 핸드백이라고 발언했다. ‘사랑’ 혹은 ‘결혼’을 유일신으로 모신 ‘멜로 드라마의 왕국’에서 이 드라마는 쿠데타를 일으켰고, 성공했다. 이 시리즈의 아버지는 바로 이 시리즈를 기획한 크리에이터이자, 총괄 프로듀서인 대런 스타. 그를 두 번에 걸쳐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드라마가 끝난 지 꽤 됐다. 허탈하겠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요즘도 늘 바쁘게 지낸다. 영국의 워킹 타이틀사에서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기로 했다. 영화 '100번의 결혼식(100 Weddings)'은 미국인의 결혼에 대한 강박을 그릴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여성 군사전문칼럼니스트가 어찌어찌하여 '뉴 타임스'라는 신문에 결혼 칼럼을 쓰게 되면서 발생하는 일이다. 물론 주인공은 결혼과 달콤한 사랑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던 여자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처럼. 그런 여자가 사랑을 믿게 되는 과정을 그릴 것이다."
―주연 배우에 대해 살짝 말해줄 수 있는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힐러리 스웽크, '금발이 너무해'의 리즈 위더스푼. 물론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주인공인 사라 제시카 파커는 당연히 1순위!"
―한국에서도 드라마 PD가 영화에 자주 손을 대지만 성공 확률은 높지 않다. 당신의 첫 영화 도전에서 뭘 중시하고 있나.
"핵심은 단순하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찾는 일이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는 뉴욕 옵서버에 실렸던 당신 친구, 캔디스 부시넬의 인기 칼럼과 책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어떻게 드라마로 옮기게 됐나.
"영국 텔레그래프지는 이 소설을 일컬어 '마티니를 마시는 제인 오스틴, 롤러블레이드를 탄 조너선 스위프트(Jane Austen with a martini or perhaps Jonathan Swift on rollerblades)'라고 평했다. 현대적이며 동시에 시니컬하다는 뜻. 여자가 스스로의 시선으로 자기들 얘기를 한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나는 작가로서, 여자의 신발을 신고 그들 눈높이로 세상을 보는 일이 즐거웠다. 여성은 진정 감성적인 피조물이다. 그들 얘기를 하는 건 일이 아니라 재미로 느껴졌다."
―'섹스 앤 더 시티'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기획을 만들어낼 정도로 성공한 외화다. 대체 무엇이 이 드라마의 성공을 이끌었다고 생각하는가.
"TV 드라마는 확실히 작가를 위한 매체다. 좋은 작가란, 상투적인 것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길을 걷다가 '어머 이 꽃 좀 봐' 하면서 발걸음을 멈추고, 꽃 향기를 맡는 그런 흔해빠진 멜로적 캐릭터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난 그런 드라마를 보면 속이 뒤집어진다. 나는 캐릭터가 '그럴듯해' 보이는 수준을 넘어 살아서 움직이는 캐릭터라고 믿기를 바랐다. 그리고 성공했다."
―베벌리힐스의 청소년들 이야기를 통해 미국식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린 '베벌리힐스의 아이들', 중산층 가정의 심리적 갈등을 탁월하게 그려낸 '멜로즈 플레이스'로 드라마제작사 폭스를 4위에 끌어 올려 놓기도 했다. 당신은 "젊은이들이 뭘 볼 때 맥이 뛰는지 정확히 짚어내는 손가락을 가진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이 능력, 어디서 왔나.
"과찬이다. 나는 워싱턴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정전문의, 어머니는 프리랜서 칼럼니스트였다. 나는 무지무지한 영화광(Movie Buff)이었는데, 우디 앨런, 존 휴스라면 특히 사족을 못 썼다. 어릴 적 영화 전단을 방에다 한가득 붙여 놓는 버릇이 있었다."
―드라마에 당신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 있는가(그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로, '섹스 앤 더 시티'에는 게이, 트랜스젠더 등 성적 소수자가 자주 등장한다).
"'나는 LA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베벌리힐스 같은 곳은 동부에서 자란 나에게 엄청난 문화적 쇼크였다. 웨스트 할리우드 아파트에 살았던 경험은 '멜로즈 플레이스'의 모델이 되었다. 나는 뉴욕에 사는 30대 여성들, 특히 도시적 삶을 사랑하는 여자친구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그들 얘기가 바로 섹스 앤 더 시티, 센트럴 파크 웨스트에 녹아 있다."
―당신의 드라마에는 485달러짜리 구두가 등장하고, 유명 디자이너들이 실제로 줄을 대지 못해 혈안이 된다고 들었다. 너무 상업적이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디자이너들끼리 싸워) 길거리에 선혈이 낭자하지 않은가. 예를 들어 지미 추, 마놀로 블라닉의 신발이 등장했다고 치자. 실제로 여자들이 그걸 좋아하기 때문에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을 사라 제시카 파커와 그녀의 의상 디자이너인 패트리샤 필드에게 맡겼다. 이것만 말하겠다. 뇌물은 절대 없었다는 것!"
―드라마에서 남자는 구두보다 더 자주 바뀐다. "한 자릿수로 잔 남자는 처음부터 기억을 안 한다"는 대사가 나올 만큼, 남자를 소비재로 치부한다.
"드라마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질색이지만, 이 드라마가 들려주려 했던 건 '남자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진정한 행복은 남자, 그리고 관계가 아니라 스스로에게서 발견하는 것이고, 때론 동성의 친구도 행복을 줄 수 있단 얘기다."
―PD로서 드라마를 만들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어떤 사항인가.
"곁에 있으면 반할 것 같은, 그래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알아내고픈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거기에 어떤 원칙 같은 것은 없다."
대런 스타는…각본·프로듀서로 출발 6년간 '섹스앤…' 연출 '트렌디 드라마' 황제
대런 스타(Darren Star)는 1961년 워싱턴에서 태어났다. 캘리포니아대에서 창작을 전공하고 각본가와 프로듀서로 출발, 베벌리힐스의 아이들(Beverly Hills, 90210), 멜로즈 플레이스(Melrose Place), 센트럴 파크 웨스트(Central Park West), 더 스트리트(The Street) 등을 기획하고, 연출했다. 그를 '트렌디 드라마의 황제''황금 손을 가진 사나이'로 만든 것은 역시 '섹스 앤 더 시티'.
1998년 처음 방송된 이 드라마 시리즈는 2004년 2월 22일까지 6년간 방송되며 미국서 평균 시청률 21.8%를 기록했다. 이들이 입는 것, 신는 것, 마시는 것, 생각하는 것은 곧 유행이 됐고, 우리나라에도 2만5000명이 '섹스&시티'의 동호회에 가입했다.
대런 스타는 이 작품으로 1999, 2000년 골든글로브 뮤지컬 코미디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주인공 사라 제시카 파커는 네 번에 걸쳐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을 세웠다. 케이블 프로그램으로는 처음으로 2001년 에미상 최우수 코미디 시리즈상을 수상했다. 이 드라마는 현재 국내 케이블에서도 방송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