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70만원 안팎과 10만원 미만. 한·미 양국 국민들이 운전면허를 따는 데 각각 드는 비용이다. 절차도 한국이 훨씬 복잡하고 까다롭다.
한국의 자동차 운전면허 합격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응시자들은 아우성이다. 응시원서에 인지를 더덕더덕 붙이는 사람이 허다하고, 운전면허 ‘10수생’의 애환이 학원가를 떠돈다. 그런데도 교통사고율은 아직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조선일보는 한국과 미국의 운전면허 시스템 경쟁력을 입체적으로 비교해 봤다.
①운전교육… 韓 전문학원서 ‘족집게式’, 美 고교에서 36시간 수업
▲미국=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의 대다수 주에선 고등학교에서 운전수업을 받고 있다. 두 학기에 걸쳐 학과 6시간, 주행 30시간의 교육을 마치면 '교육이수 증명서'가 나온다.
재미교포인 문모(여·25·회사원)씨는 "학교에서 안전운전 수칙과 교통법규 등을 가르쳐 주는 강좌를 학기 내내 개설하고 있다"며 "여름방학에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도로주행을 연습한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그레이스 운전학원의 제임스 오 원장은 "미국 운전학원은 도로 주행만 가르치는데 상황별 대처능력과 방어운전이 강조점"이라며 "한국에서 운전을 잘 하던 사람들이 여기서는 운전면허 시험에서 대개 낙방한다"고 말했다.
▲한국=전문운전학원에 다니는 게 필수처럼 돼 있다. 학과·기능(T·S자 코스 등)·주행 등 3개 시험에 대한 패키지 강의료가 50만~70만원대이다.
학원들은 '100% 합격률 보장'을 내세우고 수강생을 모집한다. 기능시험은 20시간, 주행시험은 15시간이 기본이다. 수강생들은 대개 '공식'만 달달 외운다. "차선에서 50㎝ 간격을 두고 출발해 코너에서 핸들을 1바퀴 반 돌리고…." 그런데 이런 공식은 도로 위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운전학원 강사인 정모(46)씨는 "젊은 사람들 중에는 공식을 잘 외워서 쉽게 면허를 따는 사람도 있다"면서 "이런 사람들이 곧바로 도로에 나가면 살인무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교통안전 교육은 면허시험장 등에서 3시간 동안 받는다.
②필기시험… 韓 법규·구조 복잡한 문항, 美 상황 중심 실용적 문제
▲미국=교통국(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에 응시하면 시력검사 후 필기 시험을 치른다. 뉴욕주는 객관식 20문제 중 14개, 캘리포니아주는 46문제 중 39개 이상 맞히면 합격이다.
뉴욕주 교통국의 크리스틴 벌링 대변인은 "도로 표지판, 기본적인 도로교통법 문제가 많고 자동차 구조는 다루지 않는다"면서 "실제 운전과 밀접하고 실용적인 문제들"이라고 말했다.
"학교 버스가 정지하여 빨간불을 깜박이고 있으면서 운전수가 손을 내밀고 흔들 때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운전 도중 사이렌 소리와 함께 비상차량을 본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뉴욕주의 시험 문제들이다. 무조건 외우는 것보다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유리하다.
▲한국=4지 선다형 50개 문항이다. 50분 안에 풀어야 한다. 도로교통법에 관한 질문이 94%, 자동차 구조와 취급 방법에 관한 질문이 6% 정도다. 필요 이상으로 전문적인 지식을 묻는 문제가 적지 않다.
"스타팅 모터는 회전하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이유는?" 답은 "연료 펌프 작동 불량"이다. 저학력 응시자들 사이에선 "필기시험이 사법시험 같다"는 말들이 나온다.
③주행시험… 美선 '임시면허' 6개월간 혼자 운전못하게
▲미국= 대다수 주(州)엔 기능시험이 없다. 주행시험만 본다. 바로 실전(實戰)이다. 하지만 응시자들은 주행시험을 보기 전에 충분히 연습을 한다.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나오는 임시면허증을 갖고 1년간 운전연습을 할 수 있다. 다만, 처음 6개월 동안은 3년 이상의 운전경험자(21세 이상)를 조수석에 태워야 한다.
또 새벽 12시부터 5시까지는 운전을 아예 할 수 없다. 뉴욕주 안전운전교육소의 켄트 그레이 담당관은 "임시면허 소지자는 자신있을 때 도로주행시험에 응시한다"고 말했다.
▲한국=굴절(T·S자 코스 등), 평행주차 등을 하는 기능시험이 실제 운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작년 8월 운전면허를 딴 김명국(32)씨는 “학원에서 배운 S자, T자 운전코스도 우리 집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에서는 별 소용이 없었다”면서 “운전은 사고를 내가면서 배운다는 말이 실감나더라”고 말했다.
작년 1월 면허를 딴 윤모(28·회사원)씨는 "도로주행 시험에 합격한 실력만으론 시내 도로에서 차선 바꾸는 것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④비용·대책… 韓 70만원·美 10만원, 실속없이 절차복잡
▲비용=미국은 학교에서 운전교육을 받으므로 대개 학원비가 따로 들지 않는다. 주행 연수를 전문학원에서 받으면 시간당 30달러 정도를 써야 한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필기와 주행시험 수수료는 25~35달러. 한화로 2만5000~3만5000원 정도다.
서울의 모운전학원이 제시한 총비용은 학원비 58만7000원, 신체검사·학과시험 9000원, 기능시험 4만7000원(보험료 1만원), 주행시험 4만2800원(보험료 7800원), 교통안전교육비 1만2000원, 임시면허증 수수료 2000원, 정식면허증 수수료 5000원 등 총 70만4800원. 시험에 계속 떨어지면 비용은 늘어난다.
▲대책=2004년 현재 운전면허 소지자는 2273만 5053명. 인구의 절반에 육박한다. 운전면허를 따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되, 안전교육은 강화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에 직결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작년 4월 발표한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는 한국은 22.7명으로 세계 6위, 미국은 15명이다. 실속 없이 절차만 까다로운 현 면허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은 벌써부터 나왔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의 김인석 박사는 “면허를 취득하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정작 도로에 나가 운전을 할 때는 적응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신부용 녹색교통운동 공동대표는 “절차와 내용을 현실에 맞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