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논쟁이 학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격화되고 있다. 이 시점에 과거사 논쟁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인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정치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한 책 하나가 세상에 나왔다.
지금까지 진행된 이승만 연구에서 정치사상이나 이데올로기는 본격적인 탐구 대상이 아니었다. 사실 스탈린주의나 티토이즘, 혹은 모택동사상이나 김일성주의에 필적할 만한 수준의 이승만사상이나 이승만주의를 찾아내기란 다소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생각이었다.
이에 반해 서중석 교수(성균관대)는 그동안 이승만의 일민주의(一民主義)를 부각시키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 그러한 노력이 이번 저서 출간을 통해 일단 의미 있는 결실을 맺었다. 서 교수에 의하면 일민주의는 이승만 시대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보아 전혀 손색이 없다. 그것은 이승만을 유일 영도자로 삼는 반공(反共) 이데올로기이자 단정(單政) 이데올로기로서, 이른바'한국형 파시즘'의 이념적 기반이었다.
또한 일민주의에 입각한'한국형 파시즘'은 그 효과가 당대(當代)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 이후 한국정치사 전반에 걸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일민주의의 허상(虛像)을 조목조목 밝히는 것은 하등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언설(言說)과는 달리 일민주의는 민족주의적이지도 민주주의적이지도 않았고, 평등주의적이지도 사회통합적이지도 않았다. 또한 일민주의는 역사성의 측면에서 퇴행적이었고 가치관의 차원에서 전근대적이었다. 요컨대 이승만의 일민주의는 전체주의나 군국주의적 사고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던 지배·통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결론이다. 아울러 일민주의는 이승만 개인의 퍼스낼리티 및 유교 문화와도 적절히 융합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건국 초기에 이승만이 정당 무용론자(無用論者)였다는 기존의 통설을 정면에서 반박한다. 오히려 정부 수립 직후부터 이승만은 정당 조직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가 염두에 둔 정당 이념은 물론 일민주의였다. 몇 년 뒤 한국전쟁 기간 동안 이승만이 만든 자유당은 당연히'일민주의 정당'이 되었고, 그 목적은 정당정치의 제도화가 아니라 이승만 개인의 영구집권이었다는 것이 이 책의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자유당은 그 이후 한국의 정당, 특히 여당의 전범(典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1950년대 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나 정치문화, 권력구조 등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리라고 기대된다. 그렇다고 해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승만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각별히 분석한다는 것의 의미부터 약간은 불분명하다. 일민주의 자체에 대한 연구보다는 그것을 이승만정권의 정치 행태와 관련시켜 분석하는 편이 보다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이라는 게 저자의 입장이라면, 일민주의의 정치적 언술(言述) 내지 수사(修辭)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은 과연 진력(盡力)할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일민주의를 단지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의 파시즘 지배를 위한 정치 이데올로기로 해석하는 것에도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인종주의와 비밀경찰, 개인숭배 등을 골자로 하는 전체주의는 통상적인 독재체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일민주의의 역사적 기원은 오히려 이승만의 청년 시절을 거쳐 갔던 다양한 사상적 편린, 그 가운데 특히 사회유기체론이 아닐까 싶다. 만약 그렇다면 일민주의의 이념적 계보 또한 '파시즘(Fascism)' 대신 '코포라티즘(Corporatism)'이 되어야 할지 모른다.
끝으로 이 책은 이승만 연구가 최근 10여 년 동안 쏟아낸 학문적 성과를 거의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몰라서 그랬다면 아쉬울 따름이지만 일부러 외면하려는 태도가 역력하기에 아쉬움은 안타까움으로 변한다. 저자가 보기에 이른바 보수·우파 학계의 이승만 연구란 양과 질에 상관없이 그저 '이승만 살리기'를 위한 정치적·이념적 시도에 불과한 모양이다.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