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이란 무엇인가. 자연의 리듬에 맞게 사는 삶이다. 농경사회에서는 그 자연의 리듬을 24절기로 표현하였다. 24절기 가운데 비중있는 절기를 꼽는다면 동지와 하지, 춘분과 추분이다. 4대 절기이다. 남과 북에는 하지와 동지가 해당되고, 동과 서에는 춘분과 추분이다. 올해에도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을 이틀 전에 통과하였다.
그렇다면 춘분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 절기인가. 이때부터 용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날이다. 등천(登天)하는 날인 것이다. AD 100년 무렵 허신(許愼)이 편찬한 한자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 2000년 동안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으니까,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는 사전이기도 하다. '설문해자'에서 '용(龍)'자를 찾아보면 '춘분이등천 추분이잠연(春分而登天 秋分而潛淵)'이라고 나온다.
'춘분일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추분일에 내려와 연못으로 잠긴다'는 뜻이다. 정말 용이 있어서 올라간다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이때의 용은 실재하는 용이 아니라, 하늘의 별자리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정확하게는 28수 가운데 동방 7수인 각(角), 항(亢), 저(?), 방(房), 심(心), 미(尾), 기(箕)를 가리킨다. 동양 사람들은 이 일곱 별의 늘어선 형태가 마치 용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다.
동방 7수의 맨 앞의 별이 각(角)인데, 각은 용의 뿔에 해당한다. 항은 용의 목, 저는 가슴, 방은 배, 심은 엉덩이, 미는 꼬리 끝이라고 생각하였다. 춘분날 저녁 8시 무렵부터 용의 뿔에 해당하는 ‘각’부터 조금씩 하늘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매일 1도씩 서서히 올라가면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용은, 점차적으로 가슴, 배, 엉덩이, 꼬리를 드러낸다. 약 3개월이 지나면 머리에서 꼬리까지 자신의 모습을 모두 보여준다. 그 날이 하짓날이다.
하짓날 저녁하늘을 보면 용의 머리는 남쪽 하늘을 향하고, 꼬리는 동쪽으로 내려져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다가 추분일이 되면 용은 하늘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사라진 용은 연못으로 내려와 물속에 숨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 얼마나 장쾌한 상상력인가! 먹고 사는 문제에 시달리다 보니 절기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조용헌 · goat135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