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이 시작되는 3월. 오늘은 땅 속의 개구리도 긴 겨울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다. 두꺼운 외투를 벗고 봄옷으로 갈아입으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올 봄부터는 겨울 잠에서 깨어나듯 나도 하루하루를 의미있는 날이 되게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우선 헛말, 헛일, 헛걸음부터 줄이고 하루에 5분이라도 바른 자세로 마음 때를 벗겨야겠다. 잘 산다는 것은 결국 제대로 나를 알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생활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매일 아침 처음하는 말을 좋은 말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사람의 말 중에서 ‘처음’이라는 말처럼 중요한 말은 없는 것 같다.

어린 나무들이 처음에 뿌리가 잘 붙으면 버팀목이나 울타리가 필요없듯이 첫 시작, 첫 출발은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첫 걸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이든 시작을 잘해야 끝이 있을 것이며 출발하지 않으면 도달점도 없을 것이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고 새 싹을 틔우는 나무들을 보면 스스로를 희생해서 미래를 키운 사람들을 보는 것 같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결코 공짜가 아닐 것이다.

따뜻한 봄도 추운 겨울을 통해서 오고 빛도 어둠을 통해서 온다는 사실이 예사롭게 생각되지 않는다. 삼일절이 있는 달이라서인지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럴 땐 시대의 어둠과 아픔을 노래한 오장환의 시 ‘The Last Train’을 지금도 절망하고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저무는 역두에서 너를 보냈다 / 비애야! / 개찰구에는 못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 병든 역사(歷史)가 화물차에 실리어 간다 /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 아직도 / 누굴 기다려 /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 목놓아 울리라 /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路線)이 /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저무는 역두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이 한 구절로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슬픔으로 통하는 노선으로 만들었던 시인 오장환. 그는 ‘The Last Train'(마지막 기차)으로 절망의 절창을 들려주고 있다.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는 듯이, 그는 15세에 ‘목복간’이란 시를 발표해서 문단을 놀라게 했고, 19세에 ‘성벽’이란 시집을 출간해 또 한번 문단에 화제가 되었다.

첫 시집이 출간된 뒤에 오장환은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시단의 3천재’ ‘시의 황제’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재능을 타고난 시인이었다.

천양희 시인

오장환의 ‘성벽’과 이용악의 ‘분수령’ 서정주의 ‘화사집’은 일제 말의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독자성을 가졌던 대표적인 청년 시인의 시집으로 유명하다. 그는 또 러시아 시인 예세닌의 시집을 번역했으며 김소월 시론도 몇편이나 썼다. ‘예세닌 시집’은 20세기 전반부에 나온 번역시집 중 가장 뛰어난 업적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예세닌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월북한 탓으로 타고난 재능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요절한 불우한 시인이었다. 납·월북 작가가 해금되던 1997년까지 그의 이름과 시를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잃은 것은 예술이고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다’라는 말이 어쩌면 그를 두고 한 말은 아니었을까.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어두운 밤에는 어둠의 노래가 있다’는 브레히트의 시 한 구절이 오늘 따라 어둠의 절망을 노래했던 ‘마지막 기차’를 읽는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사무치게 한다.

(천양희·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