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치 연구에 한 획을 긋는 역작(力作)이 나왔다. 서동만 교수(상지대)가 도쿄대 박사 학위 논문을 수정 보완해 출간한 이 책을 읽으며 미국 역사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의 ‘역사의 풍경’이 떠올랐다. 아마도 저자가 ‘역사적 접근 방법’을 충실하게 적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학의 접근법은 낡은 학문연구 방법이 아니라 첨단의 신과학 이론과 맥이 통하는 혁신적인 학문연구 방법이라는 개디스의 주장에 저자가 동의하는지는 모르지만 이 책은 역사적 접근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북한이 인민민주주의 국가를 거쳐 사회주의 체제로 변화해 간 과정을 추적한 저자는 다양한 1차 자료를 동원하여 서동만 버전의 ‘북한 역사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이 풍경화는 당·정 관계, 당·군 관계, 경제관계, 그리고 농촌 및 지방통치체제 등을 담고 있다. 북한 사회주의 체제라는 한 폭의 풍경화가 완성되기까지 해방과 인민위원회(1945~1946) ’인민민주주의 국가’ 수립과 ‘당=국가’(1946~1950) 6·25전쟁과 전시체제(1950~1953) 전후 경제복구건설과 사회주의적 개조(1953~1958) ’국가사회주의’와 당의 ‘일원적 지도’ 체제 확립(1958~1961) 등 다섯 개의 시기를 거쳤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공산주의 세력의 연합 정권이던 북한 지배체제는 점차 김일성 일파가 독주하게 된다.

저자가 복원한 ‘북한 역사의 풍경’은 전문 연구자를 위한 것이라서 일반 독자가 감상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다. 우선 분량이 1000쪽이나 되어 부담스럽다.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압축할 수 있는 부분들도 있을 것이다. 일반 독자가 책에 접근하려면 스스로를 김일성이라 생각하고 그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 나간다면 좀더 수월하게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복원한 북한 역사의 풍경은 사실적이다. 예컨대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로서 위치를 굳건히 하는 과정에 대한 추적과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북한에는 만주파, 연안파, 소련파, 국내파, 남로당 계열 등 여러 이질적인 세력이 공존하며 체제를 건설했는데 점차 김일성의 만주파만이 유일한 혁명전통으로 자리잡아 갔다는 사실을 잘 묘사하고 있다. 특히 1956년 종파사건을 거쳐 1961년 4차 당대회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은 김일성이 승자로 부상하는 데 중요한 시기였다. 김일성은 1967년에 최후의 승자로서 유일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는데 그 출발점이 1956년이었음을 다양한 분석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저자가 1차 자료를 활용하여 사실에 대해 천착한 점은 훌륭하고 그 분석은 날카롭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최근까지 국내에서 진행된 연구 성과들을 ‘이론의 힘을 빌려서 사실의 공백을 메우려는 경향’으로 일방적으로 치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저자가 1차 자료 분석을 통해 얻어낸 결과 중 일부는 이미 국내 연구자들이 밝혀 낸 것이다. 예컨대 북로당 창건을 계기로 박헌영과 김일성의 위상이 변화했다거나 북로당 2차 당대회에서 처음으로 ‘민주기지’란 표현을 사용하였다는 주장 등이다. 1차 자료의 분석에 쏟은 노력을 조금 덜어내서 국내에서 진행된 기존 연구를 좀더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그 성과를 출발점으로 삼았다면 저자는 현재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종장에서 북한이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실시한 시점에 대해 ‘2002년 7월 1일’로 써야 할 것을 ‘2003년 7월 1일’로 혼동한 표현도 옥에 티다.

방대한 1차 자료의 활용에도 불구하고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보면 저자에게 더 많은 1차 자료의 보완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학자, 특히 북한 연구자의 시각에서 보면 이 책은 1차 자료 분석에 충실한 저서라고 할 것이다.

저자는 학문의 길로 들어서는 후학들에게 나침반도 주고 있다. 일반 독자라 하더라도 열쪽에 걸쳐 저자가 적고 있는 삶과 학문의 길을 한 번 읽어보는 것은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승현 국회도서관 연구관·정치학 )

이승현 국회도서관 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