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

새만금 재판의 1심 판결이 오늘(4일) 내려진다. 쟁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1억2000만평에 달하는 간척농지를 만들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고, 두 번째는 담수호가 농업용수 수질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희한한 것은 새만금에 궁극적으로 농지가 조성될 거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3년을 끌어온 이 재판을 보고 있으면 왠지 허상(虛像)을 놓고 벌이는 법률 다툼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에 “(쌀이 남아돌아) 휴경 보상을 하고 있는 만큼 농지로 개발하는 데 대해선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농지보다 더 생산성 있는 용도를 찾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국토연구원을 중심으로 2003년 10월부터 새로운 개발방식을 모색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과거의 대통령들도 다르지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1년 기공식에서 공단과 항만, 관광레저단지가 들어서는 ‘종합개발’을 약속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산업 거점기지로 개발하라고 지시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서해의 생산·교역·물류기지로 개발하겠다고 공약했다. 전북 도민의 희망도 ‘복합개발’에 있다. 전북도는 최근에도 첨단공단과 국제기업도시, 항만, 레저단지, 골프장 등의 개발을 정부에 제안했다.

새만금 사업의 목적이 침체된 전북 경제를 일으켜 세우자는 데 있으므로 이런 흐름은 너무나 당연하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소외돼 농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갖게 된 게 전북의 불만이다.

간척농업으로 전북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개발의 실익이 전북도 구석구석 흘러들어가게 하려면 높은 생산성과 강한 파급효과를 갖는 제조업과 레저산업, 연구개발 단지 등이 중심이어야 하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새만금 논란을 보기 좋은 모양새로 매듭지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새로운 토지이용 계획안을 당초 계획대로 지난 연말까지 내놓았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개발계획 연구용역의 시한은 올 6월까지로 늦춰졌다. 정부가 새만금의 신개발안을 만들어 토론에 부쳤다면 법원이 국책사업의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결말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북 경제에 지금 중요한 것은 실기(失機)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의도 140개가 들어갈 넓이라는 새만금에 농지를 조성하려면 앞으로 8년이 더 필요하다. 그 땅 전부를 도시나 공단용지로 쓰기 위해 성토(盛土)를 한다면 거기서 또 여러 해가 더 필요하다. 감사원 계산으로는 돈도 28조원이 든다고 한다.

인천과 전남에서는 서해안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개발계획이 착착 진행 중이다. 인천 경제특구가 만들어지고 있고 해남·영암의 종합레저단지 개발도 무르익어가고 있다. 충청권 행정도시도 전북 경제와 전북 인구를 빼가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른 지역이 다 앞서간 뒤에 공단과 항만을 만들고 레저단지를 조성해서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서울에서 간 토목업자들 지갑만 불릴 공산도 있다. 돈을 투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개발방식을 찾아내서 때를 놓치지 않고 실행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이런 원칙만 확실하게 세운다면 개발 규모가 얼마여야 하는지, 거기에 뭘 담을 것인지, 어떤 순서로 투자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충분히 유연한 검토가 가능할 것이다. 방조제를 막느니 안 막느니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어떤 전략이 전북 경제와 전북도민에게 진짜 도움이 될 것이냐는 데에 있다. (한삼희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