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초나무에게서 듣는 음악
박 정 대
사랑은 얼마나 비열한 소통인가 네 파아란 잎과 향기를 위해 나는 날마다 한 桶의 물을 길어 나르며 울타리 밖의 햇살을 너에게 끌어다 주었건만 이파리 사이를 들여다보면 너는 어느새 은밀히 가시를 키우고 있었구나
그러나 사랑은 또한 얼마나 장렬한 소통인가 네가 너를 지키기 위해 가시를 키우는 동안에도 나는 오로지 너에게 아프게 찔리기 위해, 오로지 상처받기 위해서만 너를 사랑했으니 산초나무여, 네 몸에 돋아난 아득한 신열의 잎사귀들이여
그러니 사랑은 또한 얼마나 열렬한 고독의 음악인가
(시집 '아무르 기타', 문학사상사)
시인은 사랑을 "비열한 소통"이라고 말한다. 비열하다니? 사랑이 어떻게 비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를테면 '나'는 파란 잎과 향기를 가진 '너-산초나무'를 사랑한다. '나'는 '너'에게 날마다 한 통의 물을 길어 나르고 울타리 밖의 햇살을 끌어다 주었지만, '너'는 자기 몸에 '은밀한 가시'를 키우고 있다. 내 지극한 관심과 보살핌에 대해 너는 '가시'를 키움으로써 그것을 배반한다. 사랑의 대상은 그런 방식으로 사랑을 잔인하게 기만한다. 모든 사랑의 소통에는 '가시'가 숨어 있다. 그래서 사랑은 그토록 '비열하다'.
그런데 그 비열한 사랑에 대해 '나'는 차라리 장렬하고 싶다. '장렬하다'는 표현은 사랑의 비열함을 이미 알고 있는 '내'가 그 비열함을 껴안는 자세를 스스로 일컫는다. "너에게 아프게 찔리기 위해" 너를 사랑하는 일은 몹시 위험하다. 사랑은 비열하지만 그것의 위험을 기꺼이 감당하는 사랑은 장렬하다. 그래서 모든 열렬한 사랑은 근본적으로 비장하다. 자신의 파멸조차 사랑의 대가로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모든 사랑의 소통은 근본적으로 고독할 것이다. 사랑의 비열함을 눈치챈 자에게 사랑하는 일은 스스로 사랑의 가시에 찔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찔리기 위해 사랑하는 이 자멸적인 사랑은, 깊이 고독하기 때문에 마침내 '음악'의 경지에 도달한다. 음악이란 이미 '삶'의 영역이 아니라 아름다운 영혼의 영역이므로, 그곳에서 사랑은 장렬한 고독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연주하리라.
(이광호·서울예대교수·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