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동구 도동에 살고 있는 배양호(裵良鎬·47)씨. 인근 북구 검사동에서 14대째 터를 잡고 살다가 30년전 K-2 공군기지가 확장되면서 이곳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배씨의 생활은 전투기 소음으로 말이 아니다. 바로 옆에 K-2 공군기지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투기가 뜨고 내릴 때 소음 말도 못해요. TV는 말할 것도 없고 전화를 하다가도 잠시 중단해야 할 정도니까요."

뿐만 아니다. 과거 나무로 창문을 만들 때는 창문이 심하게 떨리거나 일상적인 대화도 불가능할 정도였다. 가는 귀가 먹거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곳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했다.

항공기 소음에 시달리고 있는 대구시 동구 불로동의 한 주민이 11일 오후 주택가를 지나 착륙하고 있는 항공기를 가리키고 있다.

비행장에서 100여m 떨어진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도기소(都基昭·51·동구 불로동)씨는 10여년전 중이염을 심하게 앓아 수술을 했다. 소음이 원인이었다고 했다. 그 후에도 난청과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30여년을 전투기 소음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견디다 못해 사상 최대 규모의 소음피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대구 동구 일대 주민들로 구성된 '대구K-2 전투기 소음피해대책본부'가 주민 1만5672명의 이름으로 지난주 서울중앙지법에 항공기 소음으로 인한 피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소송가액은 561억9000만원. 2002년 7월 김포공항 주변 주민 9600명이 19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적이 있지만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액수다.

청구금액을 내용별로 보면 2종지역(90~90웨클·항공기 소음 정도로 일상대화가 불가능한 수준)이 1인당 180만원에 소를 낸 날로부터 소송이 종결될 때까지 매월 5만원씩이다. 180만원은 과거 3년간의 피해금액. 또 3종지역(80~89웨클)은 108만원에 월 3만원씩이다. 이를 청구인의 수대로 합한 금액이 561억9000만원이다.

대책본부는 더 나아가 오는 20일쯤 주민 3만6160명의 이름으로 984억75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추가로 낼 계획이다. 이렇게 될 경우 소송에 참가한 주민수는 5만1832명에 청구금액은 무려 1546억7000여만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대책본부에 따르면 K-2 공군기지 전투기 소음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주민 숫자는 13만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1만~2만명 정도는 북구 검사동 일대의 주민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동구 해안동, 용계동, 불로·봉무동, 도동 등 11개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번에 소송에 참가한 주민은 모두 동구 주민들이다.

30년 이상 전투기 소음으로 시달리던 주민들이 소송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2001년 2월부터. 대구·경북 공군부대, 공항지역 항공기 소음피해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주민연대가 결성됐다. 주민연대는 대구, 포항, 예천, 상주 지역 소음피해 주민 100여명의 이름으로 소음피해 배상청구 소송을 전국 최초로 대구지법에 냈다.

그러나 약 2억8000여만원이 소요되는 소음감정비용이 걸림돌이 되어 2003년 12월 부득이 소송을 포기했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책본부가 다시 소송을 낸 것은 김포와 횡성 등 일부 지역에서 항공기 소음으로 인한 피해배상 청구소송이 잇따라 제기되고 일부 승소하는 소식이 날아 들면서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8월 동구 지역 여러 단체를 중심으로 대책본부가 꾸려졌고, 피해배상 소송에 참가하기 위한 신청을 접수한 끝에 소송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소송에 참가한 주민들의 사정은 다양하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전투기 소음으로 인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행복추구권이 박탈돼 정신적, 육체적, 재산적 피해를 감내하며 살아왔으나 정부는 피해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다"고 말하고 있다.

대책본부 최종탁(崔宗鐸·49) 상임대표는 "소송은 소음피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한 상징적인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전투기 소음피해 특별법 제정운동을 펼쳐 학생들에 대한 학원비와 수업료 감면, 대학 진학 특전 부여, TV시청료 등의 감면 등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을 벌여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여기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