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5일장이 겹친 지난 1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석교동 육거리 종합시장. 각종 점포가 빼곡 들어찬 시장통이 상인과 고객들의 가격 흥정으로 시끌벅적했다. 비바람과 햇살을 막기 위해 설치해 놓은 대형 아케이드 시설 내부는 물론 육거리 일대 좁은 인도까지 노점이 자리를 잡았고, 상인과 시민, 자동차, 자전거, 오토바이가 뒤엉켜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추석 대목이 끝난지 오래지만 시장은 나름대로 활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경기침체로 한창때에 비해 매상이 크게 줄긴 했지만 상인들의 얼굴엔 여유와 즐거움, 활기가 묻어났다.
미원방앗간, 순자네반찬, 별난만두, 호선죽집, 불당골튀김, 번영청과, 소니가건어물, 대원철물….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정겨운 시장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신송떡집 노창호(45)씨는 "경기가 나쁜 와중에도 그나마 기대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고 말했다. 노점에서 감자떡과 빈대떡을 파는 김학수(여·58)씨도 "작년보다는 손님이 조금 늘어난 것 같다"며 웃음을 머금었다.
청주지역 최대의 재래시장인 육거리시장이 최근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대형 할인매장에 고객을 빼앗겨 한때 고사위기까지 몰렸다가 시장 현대화와 친절운동 등으로 손님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상인들은 대형 할인매장에 대해 정면돌파 전략을 선택했다. 시발점은 대형 할인매장들이 운행하던 셔틀버스와의 투쟁. 지난 2001년 대형 매장들의 '손님 싹쓸이'에 거세게 항의해 시내에서 셔틀버스 운행을 제도적으로 중단시켰다.
이후 상인들은 본격적인 내부 개혁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기존의 노천 시장에 덮개를 씌워 눈비와 햇살을 가리는 아케이드를 설치했다. 시장을 3개 구간으로 나눠 길이 715m, 높이 10m, 폭 6~9m의 덮개를 덮었다. 재원 35억원은 청주시가 지원했다. 일부 상인들은 당시 아케이드 버팀시설인 철제 기둥의 위치를 놓고 '우리 가게 앞에는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번영회 임원들이 수개월을 쫓아다니며 설득해냈다.
아케이드 설치는 시장 전체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여름철과 겨울철 노상에 방치돼 눈비를 맞았던 상인과 좌판은 실내처럼 아늑한 공간으로 들어갔고, 손님도 부쩍 늘어났다.
미원혼수방 김익순(여·47)씨는 "아케이드가 설치된 후 시장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찾았다"고 말했다. 민성기(49) 육거리시장번영회연합회장은 "업소마다 차이는 있지만 30% 가량 손님이 늘었을 것"이라며 "아케이드 시설물이 시장 활성화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래시장을 외면하던 젊은층과 신세대 주부들도 많이 찾아온다는 분석.
상인들의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재래시장의 가장 큰 취약점인 주차난을 덜기 위해 시장 인근에 280평의 부지를 마련해 50대 수용 규모의 주차장을 설치했고, 상인들의 친목공간인 시장종합회관과 화장실도 새로 만들었다. 시장 이미지를 크게 해치던 둘쭉날쭉한 노점 좌판을 없애고 규격화된 시설을 제공했다.
또 전국에서 처음으로 재래시장 전용 상품권도 발행했다. 2003년 12월 5000원, 1만원, 2만원짜리 상품권 3억원어치를 발행했고 지난 6월에 5억원어치를 추가 발행했다. 아직까지 홍보 부족 등으로 정착되지는 못했지만 손님 유치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손님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찾아나섰다. 시내 대규모 아파트단지, 하이닉스를 비롯한 여러 기업체들과 자매결연을 추진, 고정손님 유치에 안간힘을 썼다.
육거리시장 등 시내 11개 재래시장이 용암동 현대아파트 등 29개 아파트단지와 자매결연을 했고, 상인과 주민들은 재래시장 물품 공동구매, 반상회 등을 통한 홍보, 우수고객 할인행사, 아파트 단지 내 판매장 개설 등을 추진 중이다.
공무원과 시민·여성단체 등도 재래시장 이용하기 캠페인을 벌여 힘을 보탰다. 청주시는 지난 추석에도 시청 버스를 동원해 공무원 등 4000여명의 집단 장보기를 도왔다.
육거리시장을 비롯한 시내 12개 재래시장의 현대화사업과 상품권 발행은 타지역 자치단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울산·수원·남원·군산시, 서울 강동구 등에서 관계공무원과 재래시장 상인대표들이 찾아와 아케이드 시설물과 상품권 운영실태를 조사해갔다.
한대수(韓大洙) 청주시장은 "민·관이 합동으로 재래시장 살리기 운동에 나선 덕분에 벌써부터 가시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며 "무엇보다 의기소침해 있던 상인들이 자신감을 찾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