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게 귓속말을 했다. "요즈음은 민주독재래요." 민주세력이 자행하는 독재란다. 이 말이 나를 아프게 했다. 민주세력이 독재라면 나도 규탄 대상에서 빠질 수 없다. 민주와 독재는 서로 반대인데 어떻게 "민주 독재"가 가능한가?
그럴 수 있다. 인간은 얼마든지 독선(獨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날 독재와 싸운 사람일수록 쉽게 독선에 빠진다. 아니, 그때에는 독재와 싸우기 위해 아예 독선으로 무장했다. 그리고 자신이 정의의 세력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고난을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확신은 독재와 싸울 때는 크게 도움이 되었지만 민주화 과정 후에 변화를 만들어가는 데는 장애가 되었다. 자기는 절대로 옳다는 경직된 신념 때문에 변화된 상황에 신축성 있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민주화 직후의 '재야운동'은 변화를 거부하고 모든 잘못을 "미국과 노태우"의 탓으로만 돌리다가 소멸의 길을 밟았으며 결국에는 새로 등장한 '시민운동'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런데 시민운동도 2000년 낙선·낙천운동을 하며 다시 독선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스스로 판관(判官)이 되어 정의의 잣대를 독점하고 법 위에 군림하였으며, 그 결과 편향적 운동으로 국민에게 비치고 말았다. 요즈음은 이 경향이 더욱 심해져 노무현 정부와 구분이 잘 안 될 정도다. 지금도 시민운동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지만 그 이유는 "시민운동이 옳아서 사람들이 따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권력과 한통속이 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노동운동의 독선도 심각하다. 억눌린 민중의 편에 서서 정의를 외친다는 착각에 빠져, 스스로 얼마나 심각하게 집단이기주의의 노예가 되어버렸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자성(自省)능력 부족은 자신뿐 아니라 나라의 앞날까지 망칠 것이다.
그런데 일부의 386세대와 대화하다 보면 이들도 또 다른 형태의 독선에 빠져 있음을 알게 된다. 이들의 뇌리에 50, 60대의 경험이나 지혜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들은 수구이고 꼴통일 따름이다. 어떻게 해서 독선의 검은 구름이 나라 전체를 뒤덮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현 정권까지 독선의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는 점이다. 자기는 옳기 때문에 국민여론은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야당은 기득권 세력이고 독재에 기생한 세력이며 수구꼴통이고 차떼기 정당이어서 그들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 역사하고만 대화하면 된다. 이렇게 독선에 빠지면 "민주독재"라는 수군거림도 개의치 않는다. 자신은 항상 정의의 세력이지 결코 독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선은 독재보다 무섭다. 독재는 스스로 잘못임을 알지만 독선은 끝까지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독선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려고 한, 가장 큰 죄로 간주된다.
현 정권을 생각하면 지난날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옛 동지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때는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때가 아름다웠다. 그때 우리는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지 않았던가? 동지들! 정부의 편가르기와 밀어붙이기를 어찌 민주주의라 할 수 있겠는가? 말 많았던 김영삼, 김대중 정부도 이렇게 국민의 뜻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 그리고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4대 입법안을 야당과 합의하라. 정부가 끝내 밀어붙인다면 국민은 완전히 등을 돌릴 것이다. 야당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인 대통령탄핵을 국민이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보라.
(서경석·서울 조선족교회 목사 )
입력 2004.11.1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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