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목욕탕에 간 적도, 큰 거울로 비춰본 적도 없었어요. 세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늘어난 흉터, 만약 옷 벗은 내 몸을 보면 남자들이 역겨워하지 않을까. 그때까지 상처 투성이의 내 뒷모습을 본 적이 없었어요. 직접 대면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불안하고 비참한 기분이었죠."
이선희(30)씨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 하반신 마비의 1급 지체 장애인이다. 허리춤에는 소변 처리를 위한 의료기구가 매달려 있었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 누드사진을 찍어 유명해졌다. 그녀의 사진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방송 전파까지 탔다.
"내가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요즘 누드를 찍는 게 뭐 특별할까요. 난 상처난 내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마음속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정말 이렇게 시끄러울 줄은 몰랐죠. 인터넷에는 '옷 벗고 돈 얼마 받았나' '장애인 주제에 그렇게 섹스를 하고 싶나'는 등의 댓글이 올라왔어요. 어쨌든 누드사진을 통해 처음으로 상처난 내 몸을 보았어요. 깡마르고 갈비뼈가 드러난 몸매, 골반에 파인 수술자국…. 상처를 확인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어요. 겨우 이런 것이었구나라고. 억눌렸던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었지요."
이날 그녀가 사는 제주도에는 바람이 몹시 불었다. 기자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화장한 그녀가 입술까지 덜덜 떨었다.
―왜 혼자 간직하지 않았지요.
"다른 장애 여성들에게 내 상처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도 이런 아픈 상처가 있지만 괜찮더라, 우리의 고민이 별거 아닐 수 있다는 공감을 나누고 싶었지요. 장애 여성도 성적 욕망을 갖는 여성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내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기를 원했어요. 사진이 예쁘게 편집되기를 원치 않았어요."
그녀는 고교를 졸업한 바로 다음 해인 1995년 제주도 용두암에 놀러갔다가 돌계단 아래로 굴러 경추(頸椎)를 다쳤다. 장애인으로서 10년의 세월을 지냈다.
"사고가 난 뒤로 모든 걸 포기했지요. 먹지도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어요. 그냥 침대 위에서 잠만 잤어요. 어느날 참다 못한 엄마가 휠체어에 강제로 태웠습니다. 늘 누워 지내다가 갑자기 앉히니, 몸에 이상이 생겨 순간 기절했어요. 그뒤로 조금씩 침대 높이를 올려 앉는 것에 적응해 나갔어요."
그녀의 누드사진은 장애인들의 성(性) 향유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포스터로 처음 쓰였다. 그걸 시작으로 퍼져 나간 것이다.
"마치 장애인들은 성(性)이 없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어요. 하지만 성은 인간의 몸 안에 있어요. 장애인도 인간이라면 누려야 하는 것이죠. 장애인도 키스하거나 섹스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하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요. 왜 장애인은 섹스에 대해 생각할 수도 없나요. 그걸 표현하면 더러운가요."
―성적 욕구를 많이 느껴 왔나요.
"처음에는 내 몸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조차 힘들었지요. 사고 전에 사귀었던 남자 친구가 배려해줄 때도, 내 입에서는 '오지 말라'는 소리만 마구 튀어 나왔어요. 생각해 보면 그건 두려움 때문이었지요. 언젠가 그는 떠날 것이고 내가 입게 될 마음의 상처가 겁났던 거죠. 그 뒤로 군(軍)에 입대한 그가 첫 휴가를 나와 병실로 찾아 왔어요. 그를 다시 보게 되다니, 정말 마음이 떨렸어요. 예쁘게 보여야겠다는 욕심에 처음으로 화장을 하고 머리를 빗었어요. 그렇게 대면하고 헤어졌어요. 그 뒤로 연락이 없었어요."
제주도장애인자립센터의 상담간사를 맡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도 상담하듯이 웃으며 담담하게 말해왔다. 하지만 그녀도 첫사랑의 기억 앞에서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외롭다는 느낌이 들어요. 만약 이상형의 남성을 만나면 섹스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등, 나도 이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게 되면 잠잘 수도 있는 나이가 됐지 않은가. 이런 잡념에 처음에는 내 정신이 이상하게 된 게 아닌가, 미친 게 아닐까 했어요. 하지만 내 동료들과 얘기해 보면 모두 그런 욕망을 숨겨놓고 있었어요."
―지금 애인은?
"만나는 장애인 남자 친구가 있는데 '사귀자'라고 말해야 할지 탐색하는 중이에요."
요즘은 연애할 때 "사귀자"라고 꼭 말로써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