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김광균은 자식 잃은 슬픔을 주인 없는 은수저에서 아프게 되새겼다. 김동리도 아들 진(晉)을 앞세우고 10년이 지나도록 가슴 저려 했다. ‘진이 한 조각 구름되어 날아간 날/ 하늘엔 벙어리 같은 해만 걸려 있더라/ 먹고살면 흘러가는 나날/ 십 년도 도무지 하루같이 쉬운 것을… 어이한 새 한 마리냐 너는, 지금도/ 천길 하늘 위에서 우느냐.’
▶링컨 대통령은 백악관 마구간에 불이 나자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기겁한 경호원들에게 구출된 대통령은 울고 있었다. 링컨은 몇 주 전 앓다 죽은 셋째 아들 윌리가 아끼던 조랑말을 구해내려 했던 것이다. 링컨의 아내 메리는 아들이 숨진 ‘이스트 룸’과 주검을 안치했던 ‘그린 룸’에 다시는 들어가지 않았다. 자식을 가슴에 묻는 것보다 더한 삶의 고통은 없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지 10년, 날벼락처럼 아들딸을 잃었던 부모들의 사연이 신문에 실렸다. 어느 아버지는 밥을 먹다가도 통곡하며 2년을 살다 병을 얻어 떠났다. 등교하던 딸이 다른 가족의 우산을 가져가는 것을 보았던 엄마는 지금도 자책한다. “그때 아이를 붙잡고 우산을 바꿔줘서 시간을 끌었더라면 사고 버스를 타지 않았을 텐데.” 자식의 죽음이 내 탓이라 여겨 죄책과 분노에 빠지는 ‘생존자 증후군’이다.
▶캔디 라이트너는 1980년 캘리포니아에서 차를 몰고 가다 만취 음주운전자의 차에 받혀 함께 탔던 13세 딸을 잃었다. 그녀는 마냥 슬픔에만 빠져 있지 않았다. ‘음주운전에 반대하는 어머니들’(MADD) 모임을 만들어 음주운전 감시와 강력한 법 제정에 앞장섰다. MADD는 이제 400여 지부와 100만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1997년 장기 기증을 장려하는 어머니 모임 MOD를 만든 것도 자식을 병으로 잃은 어머니들이었다.
▶형벌 같은 그리움을 봉사로 승화해내는 어머니들은 강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성수대교 사고로 숨진 여대생 이승영씨의 어머니는 딸이 일기에 남긴 ‘하고 싶은 일 14가지’를 대신 이뤄가고 있다. 보상금 2억5000만원은 장학금으로 내놓았고 호스피스로 봉사하며 10년 동안 7가지를 실현했다. 장학금을 받아 공부한 신학대학원생들은 ‘복지마을을 만든다’는 승영의 소원을 풀어줬다. 이 어머니는 “세상에 사랑이 이어지고 있으니 우리 딸, 아직 살아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어머니의 위대함이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오태진 논설위원 tjo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