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부에서 친일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나의 선조부께서도 1980년도에 국가로부터 포상(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바 있다. 그 독립운동으로 당신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의 고통 또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독립운동가의 피신활동이 어디 한두 달로 되는 것인가. 수년 동안 전국을 전전하면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실 때까지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처자불고, 가사불고, 생명불고하셔야 했다.
그런데 왜놈들과 그 앞잡이들이 수없이 찾아와서 나의 선조모와 선친에게 선조부의 행방을 대라고 하며 마구 구타하여 그로 인한 골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두 분 모두 명대로 살지 못하고 일찍 작고하시는 등 멸문지화를 당하다시피 했다. 이때 누구에게도 하소연 한마디 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해방 전의 일이지만 고희가 넘은 지금까지도 이러한 일제의 만행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일본을 증오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왕비가 무참히 살해되고 국왕도 그들 앞에서는 한낱 허수아비에 불과했으니 일반 서민들은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하였을 것이다. 6·25 당시 남한 국토 대부분이 공산치하가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살기 위해 부역을 해야 했다. 불과 몇 달 안에도 그러할진대 36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목숨을 바칠 각오로 항일독립운동을 한 극소수의 애국지사 외에 친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비록 어렸지만 소위 독립운동가의 손자라는 나 자신도 학교에서 궁성요배, 신사참배 등 그 외 많은 친일행위를 했었다.
당시 대부분의 한민족이 친일을 했는데 그것이 그들만의 잘못이겠는가. 구한말 위정자들의 실정으로 인해 국력쇠퇴로 불가피했던 국가적 비애인 것이다. 지금에 와서 친일을 정확하게 가릴 수도 없거니와, 설령 조사 결과 친일의 경중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오십보 백보인 것이다.
광복 후 건국과 더불어 많은 일군 장병 출신들이 창군에 가담하여 군을 장악했으며 친일파들이 국가요직을 차지하여 국정을 이끌어 왔다. 이것이 건국 후 있었던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어쩌자는 것인가. 시계바늘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는 3대가 망한다고 했다. 사실이다. 30여년 전 독립운동단체(대한광복단) 주역들의 자손들 모임이 있었다. 나도 참석했는데 한결같이 못살고 못 배워서 무식한 사람들뿐이었다. 선조들의 독립운동에 의한 여파로 그렇게 된 것이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이들에 대해 보상차원에서 보다 특단의 조치는 취하지 못할지언정 60여년 전 흘러간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이제와서 국론을 분열시키는 소모적인 논쟁이 국익에 도움이 되겠는가. 우리나라 현실이 그렇게 한가한 때인가. 친일문제를 특정인이나 특정업체를 겨냥해서는 안될 것이며,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더욱 안될 것이다.
(043-221-0588, 011-9842-0588)
(정태화 독립운동가 후손·충북 청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