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하게 환경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수챗구멍을 틀어막는다(to plug up the toilet)’는 말을 쓴다. 로이스 깁스(Lois Gibbs)라는 미국의 주부 환경운동가가 한 말이다. 깁스는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의 러브캐널이란 마을에 살았다.
그런데 그곳 땅 속에 묻혔던 산업폐기물에서 유독물질이 새어 나와 당시 대통령 카터가 국가 긴급재난까지 선포했다. 깁스는 주민 투쟁을 이끌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염은 별게 아니었던 것으로 판정났다. 무리한 환경운동이 아니었냐는 비판이 제기됐고 깁스는 이렇게 반문했다. “우리가 수챗구멍을 틀어막았다. 기업들은 거기에 적응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했고 그게 기업의 환경인식을 바꿔 놓은 것 아닌가?”
한국의 환경단체들도 여러 군데의 수챗구멍을 틀어막고 있다. 방사능폐기물처리장 반대투쟁이 그런 예다. 방폐장의 위험도는 현대과학으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다. 원전을 18기나 돌리고 있는 우리 처지에선 어딘가에 방폐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도 환경단체들은 방폐장 만드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수챗구멍을 틀어막자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원자력발전에 부수되는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정부가 뼈에 사무치게끔 알게 하자는 것이다. 환경단체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방폐장이 아니다. 에너지 정책 자체를 바꿔놓자는 것이다.
소각장 반대투쟁도 같은 성격이다. 서울의 노원구나 강남구에 있는 소각로는 수백억원씩 들여서 만든 시설인데 가동률이 몇 년째 30% 아래다. 언젠가 이 투쟁을 이끄는 여성운동가에게 “지어놓은 소각로를 가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자원낭비 아닌가”라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소각 정책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깨닫게 해서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쓰레기 자체를 줄이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도록 하자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완전히 틀리는 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식의 논리라면 환경단체는 뭐를 해도 괜찮다는 얘기가 된다.
시민단체가 정보도 없고 힘도 없던 시절이라면 수챗구멍 틀어막기로 나와도 그러려니 하고 이해할 구석이 있다.
예를 들어 댐이 꼭 필요한 것인지, 댐 건설 외에 다른 대안이 있는 것인지에 관한 정보는 공무원들이 갖고 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어떻게든 댐을 짓고 싶어 한다. 그래서 수요를 과장하거나 비용을 줄여 계산을 왜곡하는 일이 생긴다.
이럴 때 NGO가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드러눕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댐 건설을 골치 아프게 만들어 놓으면 정부도 다른 대안을 찾으려 하지 않을까. 이것이 수챗구멍을 막자는 NGO의 생각이다.
그러나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우선 NGO의 발언권이 엄청나게 커졌다. 옛날 시민단체가 아니다. 한탄강댐의 경우 지금 정부는 몇 달째 시민단체와 토론을 벌이고 있다. NGO의 동의를 받아야 댐을 짓겠다는 것이다.
NGO는 공무원의 협조를 받아 공무원들 잘못을 찾아내려 공문 서류철을 뒤지기도 한다. 부안 방폐장 문제에서도 정부와 NGO는 동격의 당사자로 마주앉곤 했다. 시민단체가 국책사업의 비토(veto·거부권) 집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권한이 생기면 책임도 질 수밖에 없다. 댐을 못 짓게 하고 방폐장을 못 만들게 하면서 그 대안을 내놓는 책임을 NGO가 언제까지 모른 척할 수는 없다. 국민들도 이제는 막무가내식 환경운동의 코스트(비용)를 계산하게끔 됐다. NGO의 수챗구멍 틀어막기는 그런 의미에서 지금 여론을 상대로 곡예를 하는 상황에 와 있다고 봐야 한다.
(한삼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