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는 4일 오후 1시 현실로 나타났다. 경찰 수사결과 경찰관 살해 용의자 ‘이학만’ 이름을 사용해 인터넷에 접속한 주인공은 서울 돈암동 삼성아파트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이모(12)군으로 밝혀졌다.

이군은 동네 형이 가게 벽에서 뜯어온 이학만 수배 전단지에 적힌 주민번호로 한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실명(實名)을 확인하고 개인 정보를 입력한 뒤 회원에 가입했다. 대부분 거짓 정보를 입력했지만 이메일 주소를 사실대로 적었다가 경찰에 들켰다. 3일 오후 5시부터 특공대 등 경찰 400여명을 투입한 ‘이학만 수색작전’의 전말이다.

사고를 친 당사자가 초등학생인 데다 호기심에서 그랬을 뿐 악의(惡意)가 없다는 점 때문에 경찰은 ‘훈계’만 하고 끝냈다. 법 규정(형법 232조의 2 등)은 재산상 이득이나 업무 방해 목적이 있을 때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초등학생의 경우 ID를 도용해 게임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았지만 처벌까지는 무리라는 판단이다.

그러면 이번 소동에 용의자 주민번호를 전국에 뿌린 경찰엔 책임이 없는 것일까? 서울경찰청 김병철 형사과장은 “전단에 주민등록번호를 넣어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은 ‘흉기 살인의 원인이 부엌칼 만드는 사람에게 있다’고 말하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주민번호를 공개하면 숙박부를 사용하는 여관 등에서 제보를 받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3~4년 전부터 초고속 인터넷망이 확산되면서 공개된 주민번호가 악용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상에선 이름과 주민번호를 알아내는 것만으로 남의 이름으로 불법 사이트 운영, 미성년자의 성인 사이트 가입, 음란물 배포는 물론, 통장이나 휴대전화를 만들어 범죄에 사용할 수 있다.

경찰이 4일 오전 서울 돈암동 삼성래미안아파트에서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 경찰은 이 아파트에서 누군가 경찰 살해 용의자 ‘이학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인터넷에 접속한 사실을 확인하고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다.

경찰 역시 지난 2002년 민주노총 간부들 수배 전단에 주민번호를 넣었다가 이 정보가 성인 사이트 가입, 음란물 유포에 도용되면서 민주노총에 고발당한 경험이 있다.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접수된 주민번호 도용 사례는 올 상반기에만 4552건. 다른 개인 정보 침해사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전화 등을 통해 주민번호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사내 신분증 등 사소한 문서에까지 주민번호 기재를 요구하는 사회 관행도 주민번호 유출을 부추기는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