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기피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최명진씨에게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이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란이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대법관 절반이 대체복무 등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해 병역거부 문제에 관한 불씨는 남아 있는 상태다.
◆ 판결 의미 = 대법원은 우선 종교·양심의 자유는 상대적 가치이며,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결코 국방의 의무보다 우월한 권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헌법상 기본권의 행사가 국가공동체 내에서 타인과의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다른 헌법적 가치와 국가의 법질서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양심·종교 자유를 포함한 모든 기본권 행사의 원칙적 한계"라고 지적했다.
이는 우리나라 헌법 제37조 2항의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권리유보조항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또 헌법 39조 1항이 규정하고 있는 국방의 의무에 대해 “국가의 존립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라며 “특히 남북이 분단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국방의 의무가 보다 강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인의 양심의 자유가 보다 존중돼야 한다”며 반대의견을 밝힌 이강국 대법관을 제외한 대법관 11명 모두가 의견일치를 보였다. 하지만 이 대법관은 “양심의 결정에 따라 병역의무를 거부한 피고인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국가는 형벌권을 양보하고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 대체복무 논의 촉발되나 =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비록 병역거부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지만 사실상 대체복무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종교·시민단체의 대체복무 도입 요구도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대체복무에 대해 대법원은 다수의견을 통해 “대체복무 도입여부는 입법자의 재량에 속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무제·유지담·윤재식·배기원·김용담 대법관은 병역의무를 하더라도 집총(執銃)이 아닌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는 보완의견을 내놓았다.
이강국 대법관의 경우는 “대체복무 도입 등 입법자가 구체적인 문제를 검토하고 논의를 해야할 시기”라고 한 발 더 나갔다.
당사자인 최씨는 “지금 심정은 담담하고 가슴이 아프다”며 “병역거부자가 사회에 다른 방법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 방법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각계 반응 = 의견은 엇갈렸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징역3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아들을 둔 성우 양지운(57)씨는 "지금 상황이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헌재 판결을 기다려 보겠다"고 밝혔다.
상고심에서 변론을 맡았던 김수정 변호사는 “헌재에서 위헌결정이 나면 재심 신청을 하겠지만 헌재에서 합헌결정이 날 경우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말했다. 진보적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논평에서 유감을 나타내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치 않는 것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반면 한국자유총연맹과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보수적 기독교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은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며 “이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혼란이 일단락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편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려 논란을 불러왔던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는 “국가 사법체계하에서 하급심은 대법원 판결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라며 “그나마 소수의견이 있어 다행”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