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장에는 대표 경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이력과 나이가 연설 순서에 맞춰 차례차례 대형 스크린에 비춰졌다. 김문수(53), 박진(48), 권오을(47)에 이어 홍사덕(61) 의원의 이력이 나올 때 대의원석에선 “어휴, (나이가)너무 많잖아”라는 탄식 소리가 들려 왔다. 한나라당의 리더십은 이런 분위기 속에 최병렬 전 대표(66)로부터 박근혜 대표(52)에게 넘어갔다.

열린우리당도 지난 1월 11일 전당대회에서 김원기(67) 전 의장으로부터 정동영(51) 의장으로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 정 의장과 신기남(52) 상임중앙위원 등 후배들이 나란히 경선 1, 2위를 하는 것을 지켜본 유인태 당시 정무수석(56)은 “우리 시대는 지나갔다. 노무현 정부의 여당은 50대 초반의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세대가 이끌고 갈 것”라고 말했다.

조순형 대표(69) 체제가 위기를 맞은 민주당도 추미애 선대위원장(46)을 내세워 총선 정국을 돌파하려 하고 있다.

‘박정희의 아이들’이 한국 정치의 중심 무대에 섰다. 올 들어 불과 3개월 사이에 여야 주요 정당의 리더십이 60대 후반에서 50대 전후로 이동하고 있다. 새로운 당 대표들은 모두 50년대에 태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 후반기에 대학을 다닌 70년대 학번 세대들이다.

김영삼(77), 김대중(81) 전 대통령 등이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시작된 3김시대가 30년 만에 막을 내리면서 30년의 세대차를 뛰어넘으며 리더십 이동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고려대 이내영 교수(정외과)는 “3김 다음 세대들의 정치적 상상력이 시대적 변화를 읽지 못한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20년 이상을 뛰어넘는 세대 교체가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중간 세대가 그 흐름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 탄핵정국”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주역으로 떠오른 70년대 학번 세대들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치가 끊임없이 충돌했던 박정희 대통령 통치 시절에 학창 시절을 보내며 가치관을 형성했다. 여야의 두 대표는 박정희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한나라당 박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딸이고, 열린우리당 정 의장은 73년 10월 서울대 문리대 시위 ‘적극 가담자’로 분류돼 구류 30일을 산 전력이 있다.

자기 자신 73학번 출신인 서울대 박찬욱 교수(정치학)는 “70년대 학번 세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애증(愛憎)을 공유하고 있다. 대학 다닐 때는 민주화를 외치며 박정희를 미워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그가 이룬 산업화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한국 사회에서 충돌하는 두 가치를 조화시키라는 시대적 요구를 이들 세대들이 떠맡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정동영 의장은 지난 9일 한 연설에서 “초등학교부터 사회생활(MBC 기자)을 시작할 때까지 대통령은 언제나 박정희였고, 그는 극복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면서 “박 전 대통령이 10년, 20년 대한민국이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를 준비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내가 가졌던 (독재자) ‘박통’에 대한 평가를 절반쯤 수정했다”고 말했다.

70년대 학번 세대들은 또 한국전쟁 직후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다. 미국, 유럽 등 서구 국가에서도 전후 베이비붐 세대는 정치권의 세대 교체를 상징하는 그룹이었다. 2차대전 직후인 1946년 태어난 클린턴이 92년 대선에서 당선됐을 때 미 언론은 “미국의 리더십이 전전(戰前) 세대에서 전후(戰後) 세대로 넘어갔다”고 평가했었다.

그러나 70년대 학번 세대가 실제 횃불을 이어 받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평가도 있다. 이내영 교수는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에 의해 50대 초반 당 대표들이 등장했지만 30년대, 40년대에 태어난 중간 세대들이 그대로 퇴장할 것인지, 아니면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인지는 좀더 지켜봐야 하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대 송호근 교수(사회학)는 세대 교체는 보다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70년대 학번 세대의 등장은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다른 차원의 반론을 편다. 송 교수는 “70년대 학번 세대는 실질적인 새 시대 주역인 386세대의 에너지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라면서 “일반적으로 국민소득이 1만달러 수준에서 분출하는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양김 카리스마에 의해 10년 가량 억눌렸다가 뒤늦게 실현되는 과정이며, 실질적인 주도 세력은 386세대가 이어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70년대 학번 세대는 자신들의 주도적 노력에 의해 리더십을 쟁취한 것이 아니며, 유권자들의 변화에 대한 갈망에 의해 준비 없이 떠맡게 된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중앙대 장훈 교수(정외과)는 “옛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은 아직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짊어지게 되는 새로운 세력은 곧 과부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