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의 군만두
복수심에 사로잡힌 한 인간이 ‘원수’를 어느 정도까지 학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 ‘올드보이’엔 온갖 종류의 가혹한 행위가 묘사된다. 그 엽기적 상상력은 상당 부분 원작인 즈치야 가롱의 일본 만화 ‘올드보이’에 빚지고 있지만, 재미있는 건 박찬욱 감독이 한술 더 뜨고 있다는 사실.
우선 일본 만화에선 한 사내가 영문도 모른 채 사설 감옥에 갇혀 보내는 기간이 10년인데, 우리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최민식)는 5년을 더해 ‘15년형’을 산다. 박 감독 말은 이렇다. “길면 길수록 처절하지 않아요?”
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를 본 일본인들마저 경악하게 한 건, 갇힌 오대수가 15년 동안 단 한 끼도 변함없이 군만두를 먹게 되는 상황에 빠진다는 묘사다. 원작 만화에서 감방 안의 사내가 배달되어 온 각종 중국요리를 먹는다는 것과 비교하면 천당과 지옥의 차이다.
연거푸 두어 번 먹어도 물릴 군만두를 15년간이나 먹다니! 끼니 수론 1만6425끼. 3년간 단 한 끼도 같은 음식이 없게 식단을 짰다는 중국 진시황의 식사가 호사의 극이라면, 15년간 군만두만 먹인다는 건 ‘음식 고문’이다. 철창 안의 오대수는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는 만두지만, 그 ‘망할 놈의 허기’ 때문에 비굴하게 입에 쑤셔넣는다.
그 모습이란 벌레를 씹는 빠삐용과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박종영 감독의 2002년작 단편영화 ‘링반데룽(Ringwanderung)’은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옷만 입고 사는 상황을 권태를 너머 ‘공포’의 상황으로 그렸을까.
먹는 괴로움을 느끼게 할 메뉴로 군만두를 택한 건 탁월한 선택이다. 기름에 튀겨 퍽 느끼하다. 그리고 한 끼 식사라기보다는 여럿이 나눠 먹는 애피타이저이고, 동네 중국집에 ‘탕수육 大’를 하나 시키면 따라오는 ‘서비스’ 음식이니까.
아이로니컬하게도 오대수를 학대했던 군만두는, 훗날 오대수가 가해자를 찾아내는 결정적 실마리가 된다. “15년 먹은 맛을 어찌 잊겠냐…”며 의심 가는 중국집 군만두를 다 먹어보던 오대수의 혀에 사설 감옥에 배달한 중국집이 걸려든다. 하지만 실제론 군만두 맛으로 특정한 중국집을 찾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요즘 중국집 군만두는 몇 군데의 업체에서 만든 만두를 사다가 튀겨내 맛의 평준화가 이뤄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