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삼희 논설위원. <a href=http://db.chosun.com/man/>[조선일보 인물 DB]<

요즘 「위원회」라는 게 곧잘 활용되고 있다. 집단 이익이 부딪치는 국책사업 등에서 갈등을 풀어나가기 위해 정부가 쓰는 수단이다. 경부고속철과 서울외곽순환도로의 결론을 내자며 발족시킨 「노선 재검토 위원회」가 그런 예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논의하기 위한 「교육정보화위원회」도 움직이고 있다. 민주당이 운영을 맡기로 한 「새만금 특위」도 있다.

서울외곽순환도로 노선 재검토 위원회의 경우 이달 초 총리실 주관으로 국민토론회를 열었다. 4월부터 해온 검토 작업을 종합해 발표했던 자리로 10명의 위원이 각자의 견해를 밝혔다. 북한산을 관통하는 기존 노선을 찬성하는 사람이 4명, 의정부로 멀리 우회하는 노선의 지지가 5명, 북한산 경계를 타고 돌아가는 노선을 선택한 사람이 1명이었다. 3분의 2 이상 지지를 받는 노선으로 정한다는 조건이었으므로 위원회는 결론을 끌어내는 데 실패한 셈이다. 공은 다시 정부로 넘어갔다.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한 건 예정된 코스였다. 사업 주체인 건교부와 기존 노선에 반대하는 불교계가 각각 5명씩 추천한 전문가들로 위원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믿을 만한」 사람을 골랐을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풍수지리 전문가에서 도로 수익성을 따지는 경제학자까지 분야가 딴판인 사람들에게 똑같이 한 표씩 주는 결정방식이 얼마나 타당한지도 논란거리다.

총리실은 이런 종류의 위원회 운영방식의 문제점에 관해선 이미 1999년 운영했던 「새만금 공동조사단」을 통해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경험이 있다. 조사단에는 찬반 양쪽이 10명씩 위원을 추천했는데, 마지막 보고서를 작성할 때 찬반 비율은 「11대9」였다. 도저히 합의를 낼 수 없는 팽팽한 결과였다.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1년을 토론해봤지만 20명 중 1명을 빼놓고는 들어올 때 문과 나갈 때 문이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 활동 중인 다른 위원회라고 틀리지 않을 것이다. NEIS 문제의 경우 갈등의 당사자인 전교조가 들러리 서기는 싫다며 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위원회란 만드는 순간 이미 승패가 나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새만금특위도 환경단체에선 인원 구성이 편파적이라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위원회라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장식물이기 십상이다. 『전문가들 의견을 다 들었는데…』라며 공무원들이 발뺌하는 도구로나 이용된다. 대개 방향은 정해놓고 요식적으로 운영하기 일쑤라는 비판이 진작부터 많았다.

정부가 정말로 생산적인 결론을 원한다면 위원회 구성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결론이 뻔히 내다보이는 치우친 인적 구성이라면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 공평하게 한다며 「찬반 동수」로 참여하게 하는 것도 싸움판 멍석을 깔아주는 것일 뿐이다.

무엇보다 위원회의 운영은 학습의 과정이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설득당할 각오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하게 해야 한다. 절대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에게 괜한 돈 줘가며 위원회를 꾸려나갈 이유가 없다. 후보군(群)을 정한 뒤 찬반의 양 집단으로부터 모두 동의를 받는 사람만 위원으로 선정하는 「배심원 선임 방식」의 구성방법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정책의 결정권을 행사할 권한과 책임은 정부에 있다. 물론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이 불확실한 부분은 있을 것이다. 널리 의견을 수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시기를 놓치지 말고 결정권을 행사해야 하는 게 정부의 책무다. 그래놓고 나서 평가받을 것은 평가받고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라야 한다. 누가 단식한다고 해서 하던 작업을 멈춰 세우고,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위원회」를 방패로 세워놓고 국가 대사(大事)를 방치한다면, 그때 생기는 혼란과 손해는 국민이 뒤집어쓸 뿐이다.

(한삼희 논설위원 shh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