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에 딴지 걸기: 고우영의 [삼국지]
권위주의의 시대는 갔다. 그러나 그저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 때문은
아니었다.
1970년대말 유신정권의 막바지는 권위주의의 극성기이기도 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낮게 웅얼거릴 뿐 숨죽이고 있을 때 고우영의 만화는 흔치 않은
탈출구가 되어 주었다. 특히 1978년부터 연재된 '삼국지'에서 고우영
만화의 무르익은 창조력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지'에서 고우영은 두 가지 혁신을 도입한다. 한 가지는 유비를
비롯한 영웅들을 오히려 주변으로 밀어내버린 것. 원본 '삼국지'의
근엄한 영웅 유비 대신 촐싹거리는 유비가 등장한다. 고고한 선비
제갈량은 섹시해 보이기까지 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고우영의 익살
속에서 우리를 짓눌러왔던 영웅의 권위는 부서지고 우리의 사고는
개방된다. 1980년대 이후 일련의 대통령 유머 시리즈가 유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고우영의 권위 깨기가 분명 한몫을 담당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만화와 현실을 연결시킨 것이다. 만화는 언제나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지만 대다수 만화는 현실의 언급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고우영은 좀 더 드러내 놓고 현실을 암시하며 그에
야유를 보낸다. 신성불가침의 유신체제가 지배하던 시기에 고우영의
만화가 주었던 통쾌한 해방감이란! 우리 만화가 어른들도 볼 수 있는
만화가 되었다면 그것은 고우영의 노력 덕분이었다. 1980년대 만화의
부흥기는 고우영이 닦아 놓은 것이기도 했다.
권위주의 정권이 쇠퇴하면서 고우영의 유머는 힘을 잃는다. '초한지'를
마지막으로 과거의 인기도 그저 기억의 일로만 남게 되었다. 파격적인
칸의 배치도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그저 기계적일 뿐. 대사 중심의
전개도 새로운 독자의 감각과 잘 맞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흘러도 고전으로서 고우영 만화의 가치는 여전히 빛을 발할 것이다.
권위주의의 기반을 파헤친 덕분에 오히려 고우영은 권위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