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명품 의류와 장식품만을 취급하는 '명품
전당포'가 유행이다. 2년 전부터 하나 둘씩 생겨나 지금은 압구정동
주변에만 30곳이 넘게 성업 중이다. 전국에 체인점을 수십 곳 내는
전당포가 나올 정도로 규모가 커지자, 막강한 자금력으로 무장한
대기업까지도 '전당포 대박'을 꿈꾸며 뛰어들고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A 전당포. 40평 남짓한 매장에는 수십만원에서
수천만원짜리 가격표를 단 고급 핸드백과 시계·구두가 즐비했다. 매장
안은 20~30대 젊은 여성들로 북적거렸다. 과거 전당포에서 연상되는 녹슨
쇠창살과 초인종 대신, 푹신한 소파와 향긋한 커피가 고객을 맞이했다.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에 고급스러운 체리빛 진열대가 놓인 매장은 일류
백화점의 명품관을 닮았다.
두 달 전 문을 연 이 매장은 대형금융회사가 50억원 규모의 자금을 댄
'재벌 전당포'. 기존의 구멍가게 같은 영업방식을 벗어던졌다.
전당포와 은행의 기능이 결합된 미국의 '폰뱅크(pawn bank)'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 명품을 담보로 잡아 월 2.5~5% 금리로 돈을 빌려
주고, 일정 기간이 지나도 찾아가지 않으면 일반인에게 처분하는 식이다.
경영은 대기업에서 10년간 일한 대졸 출신 금융통이 맡고 있다. 하루
평균 고객은 20~30명. 광고 한번 안 했지만 개장 후 한 달 만에
5000여만원의 대출 실적을 거뒀다.
김모(35) 점장은 "자금과 아이디어가 풍부해 1~2년 내에 코스닥 등록도
문제 없다"며 "압구정점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매장을 5곳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명품 전당포의 주 고객은 유행 따라 제품을 바꾸는 일부 부유층이나
카드빚에 쪼들리는 젊은 여성들이다. 서울 강남의 K전당포 주인
황모(46)씨는 "특히 카드 결제일에 임박해 명품 가방과 시계를 들고
찾아오는 20대 여성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명품을 카드로 구입하고,
카드값을 갚기 위해 그 명품을 저당 잡히는 속칭 '명품깡'을 하는 젊은
여성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A전당포 앞에서 만난 회사원 이모(25)씨는 올 들어서만 전당포를 세 번
이용했다. 값비싼 명품을 사기 위해 진 카드빚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명품을 전당포에 맡겨 현금을 챙겨 카드를 막고 결제일이 지난
뒤에 현금서비스를 받아 다시 물건을 찾아온다"고 말했다.
제도권 금융사까지 가세할 정도로 명품 전당포 시장이
대형화·기업화하는 이유는, 경기 불황임에도 우리 사회 한쪽에서 식지
않는 '명품 열풍'이 한몫 한다는 분석이 있다. 명품은 여전히 환금성이
높은 데다 고객층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명품전당포의 시장은 현재 1조원
수준이지만 수년 내 10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2년 만에 전국에 24개 체인점을 낸 '캐시캐시'의 사승리(41) 사장은
"카드 수수료보다 이자는 비싸지만 연체가 돼도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고
돈만 생기면 언제든지 맡긴 물건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에 손님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명품 전당포의 성황은 역으로 카드 채무불량자가
양산되는 우리 세태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