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들은 종종 쉬어가는 영화를 만든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펀치드렁크 러브'(Punch-Drunk Love)는 데이비드 린치의 '스트레이트
스토리'나 난니 모레티의 '아들의 방' 같은 작품이다. 그는 '리노의
도박사'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를 통해서 모순으로 가득 찬
불가해한 세계, 그 속에서 숱한 업(業)을 지으며 죄책감으로 허우적대는
인물들을 그려내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해왔다.
그러나 '펀치드렁크 러브'는 시간과 공간을 종횡으로 엮으며 장대한
'인생유전(人生流轉)'을 펼쳐내지 않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유일한
영화다. 이번에 그가 택한 것은 놀랍게도, 로맨틱 코미디다. 폴 토머스
앤더슨이 킴 카잘리의 한 컷짜리 만화 시리즈 'Love Is…'의 세계
속으로 뛰어든 듯한 이 작품은, 나직하지만 울림 깊은 목소리로 '작은
사랑의 멜로디'를 들려준다.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주인공 배리(애덤 샌들러)를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배리는 극성스런 일곱
누이 밑에서 기 한번 못 편 채 살아가는 소심한 남자다. 비행 마일리지를
높이기 위해 항공사와 제휴한 제과회사의 푸딩을 수백개씩 사모을 정도로
편집증에 가까운 집착을 보여주는 그는 항상 예의바르지만 내면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면 아주 가끔 거칠게 폭발한다. 외로움 끝에 시도했던 폰섹스
한 통으로 곤경에 빠진 그에게 갑자기 사랑이 찾아온다.
배리는 시종 푸른색 양복을 입고 나온다. 감독은 '우울'을 뜻하는
푸른색의 이미지를 빌려 그의 고독을 길게 설명한 뒤, 갑자기 찾아온
사랑을 신념에 가득 찬 어조로 찬양한다. 미국의 젊은 감독 중 '벨벳
골드마인'의 토드 헤인즈와 함께 최고 테크니션이라 불릴 만한 폴
토머스 앤더슨이지만, 여기선 유려한 영상을 버리고 거칠고 즉흥적인
연출로 배리의 내면을 파고드는 데 집중한다. 코믹 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있는 애덤 샌들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
배리는 도입부에서 우연히 교통사고를 목격한 뒤 거리에 내동댕이쳐진
낡은 풍금을 몰래 사무실로 들여온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레나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그 작은 풍금을 들고 간다.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불현듯 다가오고, 풍금소리처럼 따뜻하고 푸근하며, 펀치드렁크(누적된
펀치를 맞은 권투선수의 상태)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얼얼한 것.
그게 이 사랑스런 영화가 담고 있는 전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