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 지하철 전동차 방화 대참사는 뇌졸중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뒤 세상을 비관한 한 50대 장애인의 어처구니없는 앙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범인 김대한(金大漢·57)씨는 범행 2시간 후 대구 조광병원에서 태연히 치료를 받던 중 목격자의 제보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 중부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2001년 중풍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대구 시내의 모 택시업체에서 택시기사로 일했으며 그 이전에는 화물차 운전사(6년), 행상 등을 했었다.
김씨는 중풍에 걸린 직후 다시 실어증(失語症), 우측 반신 마비, 뇌경색 등 각종 질환에 걸려 ‘뇌병변 장애2급’의 장애인으로 해당 동사무소에 등록됐다. 김씨는 중풍에 걸리기 이전인 1999년에는 대구 시내의 한 신경외과에서 ‘지속성 통풍 장해’ 판정을 받기도 했으며 작년 8월에는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사건 발생 직후 대구 중부경찰서로 달려온 김씨의 아들(27·기계설비회사원)은 “아버지가 심한 우울증으로 자포자기하는 언동을 자주 보여왔고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없었다”며 “남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들 김씨는 또 “아버지가 뇌졸중에 걸린 후 완치되지 못한 것을 병원 의사의 잘못이라고 말해왔다”며 “TV에서 가끔 지하철 사고가 난 장면을 보면, 아버지가 ‘나도 지하철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고 말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001년 중풍 치료를 받은 지 6개월 이후부터 여러차례 가출했으며, 작년 여름에는 파출소에서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김씨가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겠다고 해 데려왔다”며 “김씨가 우리에게 ‘당신들 총이 있으니 날 좀 죽여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이외에도 올해 1월 대구 보훈병원 응급실에 찾아가 당직 의사에게 ‘날 좀 죽여달라’고 말하는 등 파출소에서 2번, 병원에서 2번 등 지금까지 기억되는 것만 모두 4번의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올 1월쯤 휘발유 큰통 2개를 사가지고 왔길래 ‘왜 이런 것을 샀느냐’고 물어보니 ‘내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의사를 죽이겠다’고 말해 설득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범행에 사용한 휘발유는 사건 발생 직전 집 근처 주유소에서 사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김씨의 딸(27·학원 강사)은 “아버지는 평소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사건 당일인 18일 가족들이 일터로 나갈 때 김씨 혼자 집에 있었으며, 가족들은 “아버지가 무슨 일을 저지를 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들 김씨는 “오전 8시쯤 출근하기 전 아버지가 자고 있기에 깨워 ‘회사 다녀오겠다’고 말한 게 아버지를 마지막 본 것”이라고 말했다.
범인 김씨는 현재 다리 등에 2도 화상을 입었을 뿐 의식은 또렷한 상태라고 경북대병원 관계자는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여전히 경찰의 조사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