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이라는 가깝고 편리한 소통을 외면한 채 우리는 지그재그의 산길을
넘었다. 경북 청도(靑道)로 가는 중이었다. 유등연지 앞을 지날 때 버쩍
마른 연잎이 자동차의 속력을 늦추게 했다.

문득 3년전 쯤 보았던 석빙고의 장대석이 떠올랐다. 일제시대의 건물이
남아있던 기억 속의 좁은 골목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낯설긴 했지만 굴촉성의 넝쿨처럼 휘어진 길의 굴곡은
그대로였다. 좁은 진입로를 따라 화양읍성의 흔적이 이어졌다. 축조 당시
165센티미터였다는 물리적 높이가 절반으로 거세당한 희미한 성이었다.
길이가 약 2킬로미터였다던 읍성은 마치 말줄임표처럼 뚝뚝 끊어졌다.
최근에 지은 듯한 우사의 진입로 때문인지 성을 잔망스럽게 무너뜨렸다.

언덕 아래 석빙고가 보였다. 흙이 무너져 내려 장대석만 몇 줄 덩그렇게
남은 섬?한 외형은 마치 공룡의 골격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고고학적 해석이 아니더라도 세월의 학대를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바닥에선 파란 하늘이 휑하니 보였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목소리도 크게 낼 수가 없었다. 인근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천장의 장대석을 밟고 지나갔다. 가슴이 서늘했다.
八자형의 돌이 짜임새 있게 얽혀 있었지만 위태로웠다.

보물 323호로 지정된 청도 석빙고가 이렇게 방치되고 있었다. 창녕(昌寧)
석빙고의 굳게 잠긴 철문과는 대조적이다. 우리의 문화재 관리는 밀폐와
방치라는 양 극단의 길 밖에 없는 것일까.

(천수호·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자)